좋은 말씀/-겨자씨칼럼 250

꽂힌 것 한 가지

꽂힌 것 한 가지 “하루키가 홀로 떠나는 여행과 수영, 치노팬츠, 클래식음악을 빼먹지 않듯이(중략), 알랭 드 보통이 ‘보통의 행복’을 빼먹지 않듯이(중략), 모든 작가들은 자신이 꽂힌 한 가지 스타일을 반복해서 재생산하는 걸 즐기는 것 같다.” 조안나 저(著) ‘당신을 만난 다음 페이지’(을유문화사, 72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세상은 수많은 이야기들의 홍수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억만 이야기가 있어도, 시인들은 자신에게 가장 꽂혔던 한 가지를 반복하여 이야기합니다. 이제껏 하늘나라 3층천을 체험한 사람은 사도 바울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이야기를 오직 한 곳에서만 합니다. 그것도 생생한 감정이 사라진 후, 살짝 지나가는 말같이, 마치 제3자가 체험한 것같이 말입니다. 그 대신에 서신(書信..

큰소리 치는 아버지

큰소리 치는 아버지 “아침 됩니다 한밭식당/ 유리문을 밀고 들어서는/ 낯 검은 사내들/ 모자를 벗으니/ 머리에서 김이 난다 /구두를 벗으니/ 발에서 김이 난다/ 아버지 한 사람이/ 부엌 쪽에 대고 소리친다/ 밥 좀 많이 퍼요!” 윤제림 시인의 시 ‘가정식 백반’입니다. “밥 좀 많이 퍼요!” 이 구절을 한참 바라봅니다. 참 따뜻합니다. 눈물이 납니다. 우리들의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세상 앞에 고개 숙이고, 자존심도 코트 속에 구겨 넣고, 겨우 식당 부엌을 향해 “밥 좀 많이 퍼요!” 하는 소리만 지를 뿐입니다. 우리들의 아버지는 남산 위에서 철갑을 두른, 바람서리에도 불변하는 소나무 같은 존재가 아니라 쓰러진 나무 같은 분들이었습니다. 일본의 작가 오쿠라 히데오도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 모두가 주..

하나님은 뒤집기의 명수

하나님은 뒤집기의 명수 “‘자살’을 거꾸로 읽으면 ‘살자’가 되고, ‘역경’을 거꾸로 읽으면 ‘경력’이 되고(중략), ‘문전박대’를 거꾸로 읽으면 ‘대박전문’이 되며, ‘내 힘들다’를 거꾸로 읽으면 ‘다들 힘내’가 된다.” 고은정 편저(編著) ‘하루 한 줄 마음 산책’(문예춘추사, 92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노(NO)를 거꾸로 하면 온(ON)이 됩니다. ‘입산금지(入山禁止)’를 뒤집으면 ‘지금산입’(지금 즉시 산에), ‘금지’도 거꾸로 뒤집으면 ‘지금’이 됩니다. ‘악’을 의미하는 영어의 ‘evil’을 뒤집으면, ‘삶’을 의미하는 ‘live’가 됩니다. 하나님은 뒤집기의 명수이십니다. 에스더서를 보면 바벨론의 2인자 하만이 나옵니다. 그는 자신에게 고분고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포로로..

빈공간

빈공간 “우리가 늘상 밥을 담는 그릇의 핵심은 그릇의 재질이나 형태가 아니라 밥을 담을 수 있는 ‘빈 공간’이며, 마찬가지로 집의 핵심은 건축 재료나 구조가 아니라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빈 공간’으로 봤다.” 오정욱 저(著) ‘빼기의 법칙’(청년정신, 46쪽)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바퀴의 핵심은 바큇살이 바퀴통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한 ‘빈 공간’입니다. 금반지도 그렇습니다. 금반지의 본질은 금이 아니라 손가락에 낄 수 있는 빈 구멍입니다. 피리도 속이 비어 있어야 연주자의 호흡이 들어가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원자(atom)들이 움직이려면 빈 공간이 필요하고, 우리 몸도 빈 공간들 덕분에 기능하고 활동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빈 하늘을 보며 무한한 상상력을 키웁니다. 무엇보다도 파스칼..

득도(得道)했을 때가 위험한 때

득도(得道)했을 때가 위험한 때 “불교에서 득도(得道), 즉 깨달음을 얻는 것을 견성(見性)이라 한다. 문자 그대로 일체 만물의 근본이 무엇임을 보고 알았다는 뜻이다(중략). 그러나 불교에서는 이때를 가장 위험한 때로 간주한다.” 이재철 저(著) ‘참으로 신실하게’(홍성사, 219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득도의 단계는 이른바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닌 것을 보는 단계라고 합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세계의 다른 면을 보는 단계입니다. 그런데 겨우 이 정도의 깨달음에 들어선 것을 가지고, 마치 모든 도를 완성한 듯 착각할 수 있기에 가장 위험한 단계라는 것입니다. 기독교 초기 수도자들은 사막에서 경건의 훈련을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사막에서 수도자가 하나님을 경험하는 극적으로 신비한 체험을 할..

결 “돌을 다룰 때 서툰 사람은 먼저 망치부터 집어 듭니다. 하지만 노련한 석공은 우선 돌의 결부터 살핍니다.” 최필규 저(著) ‘머리에서 가슴까지 30센티 마음 여행’(프리이코노미 라이프, 71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돌을 다룰 때 어설픈 아마추어는 망치부터 듭니다. 그러나 고수 석공은 돌의 결을 먼저 봅니다. 결대로 치면 돌이 나갑니다. 힘 가지고 되는 게 아닙니다. 사물의 결, 역사의 결을 봐야 합니다. 만물은 결이 있습니다. 나무에도 나뭇결이 있고, 바람에도 바람결이 있고, 물에도 물결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숨에도 결이 있어 숨결이라고 합니다. 결이 있다는 것은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고유한 존재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삶에도 결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한 일을 위해 태어난 존재입..

20분

20분 “어스름 달빛에 찾아올 박각시나방 기다리며 봉오리 벙그는 데 17분, 꽃잎 활짝 피는 데 3분. 날마다 허비한 20분이 달맞이꽃에게는 한 생이었구나.” 시인 고두현의 시 ‘20분’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내가 게으름 부리며 허비한 20분이 달맞이꽃에겐 한 생애입니다. 내가 불평불만하며 보낸 한나절이 하루살이에게는 일생입니다. 고대 희랍의 시인 소포클레스가 말했듯이,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 하루는 어제 죽어간 사람들이 그토록 바라던 내일입니다. 그리고 내가 겨우 라면받침대로만 썼던 책 한 권은 어쩌면 지은이가 평생을 바친 눈물일 수 있습니다. 태산(泰山)에 부딪혀 넘어지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것은 작은 흙무더기입니다. 인생의 성패는 20분 같은 작은 것의 관리에 있습니다. ‘견..

그건 싸우지 말고 피하라

그건 싸우지 말고 피하라 “분노나 도박과 같은 중독, 유혹 등의 충동이 발생할 경우에 가장 현명한 길은 도피하는 것이다. (중략) 피하라는 36계가 최고의 계책이다.” 임희택 저(著) ‘망각의 즐거움’(한빛비즈, 249쪽)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성경은 피 흘리도록 싸워 이겨야 할 것이 있고, 아예 피해야 할 것이 있음을 말해 줍니다. 피해야 할 대표적인 게 ‘정욕’입니다(딤후 2:22). 한 수도사가 수도원을 빠져나와 음란영화를 상영하는 곳에 갔습니다. 추잡한 영상이 가득하자 수도사는 기도했습니다. “마귀야, 물러가라. 물러가라!” 그러자 마귀가 나타나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여긴 내 영역인데, 왜 네가 와서 나가라고 하느냐.” 그곳에 가서 믿음으로 이기려고 하지 말고, 그 장소에 가지 않는 것이 ..

잡초(雜草), 야초(野草)

잡초(雜草), 야초(野草) 아들과 함께 여행했을 때였습니다. 아들이 이름 모를 풀을 보며 “저 풀이 뭐예요” 하고 묻기에 무심코 “응, 잡초야”라고 대답했습니다. “저 풀은 뭐예요?” “응, 그것도 잡초.” 그러자 아들이 말하더군요. “아빠가 모르는 풀은 다 잡초예요?” 그 말에 크게 얻어맞은 듯했습니다. 내가 모르는 풀을 다 잡초라고 하듯이, 내가 꺼려하는 사람도 잡초처럼 여기지는 않았는가.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잡초(雜草)라고 하지 않고 야초(野草)라고 부릅니다. 잡초라고 할 때는 뽑아야 할 대상으로 여기지만, 야초라고 하면 더불어 살아야 하는 이유 있는 존재가 됩니다. 세상 만물은 이유 없이 ‘던져진’ 존재들이 아니라, 하나님 뜻에 의해 ‘보내진’ 존재들입니다. 더군다나 인간은 더욱 그러합니다...

을돌이와 을순이

을돌이와 을순이 대중가요 ‘갑돌이와 갑순이’를 패러디한 유머가 있습니다. 서로 갑으로만 살았던 이 둘은(그래서 갑돌이와 갑순이) 먼저 사랑한다고 하면 손해 보는 것 같았습니다. 하여 서로가 끝까지 말을 하지 않고 있다가 갑돌이는 ‘을순이’에게 장가가고, 갑순이는 ‘을돌이’에게 시집갔다고 합니다. 사랑보다는 고분고분할 ‘을’을 찾은 것입니다. 그리하여 결혼 첫날밤은 울었지만 다음 날부터는 웃었다는 유머입니다. 최승호님의 시 ‘오징어 부부’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그 오징어 부부는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부둥켜안고 서로 목을 조르는 버릇이 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갑질은 폭력에 가깝습니다. 참사랑을 하면 힘을 뺍니다. 마치 을이 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머니와 딸이 다투면 대부분 어머니가 을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