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겨자씨칼럼 250

불쌍하도다

불쌍하도다 ‘시를 썼으면/ 그걸 그냥 땅에 묻거나/ 하늘에 묻어둘 일이거늘/ 부랴부랴 발표라고 하고 있으니/ 불쌍하도다 나여/ 숨어도 가난한 옷자락 보이도다’. 정현종의 시 ‘불쌍하도다’입니다. 시인은 세상에 자기를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을 부끄러워했습니다. 더군다나 세속적 욕망을 좇고 있으면서도 안 그런 척, 고상한 척하며 자신의 욕망을 숨기려는 위선적 자아를 더욱 부끄러워합니다. 앞뒤가 전부 못난 사람은 그런대로 괜찮습니다. 앞뒤의 편차가 큰 사람이 문제입니다. 자신을 불쌍히 여겨 달라며 예수님께 나아온 사람은 한결같이 앞뒤가 다 못난 사람들이었습니다. 똑같이 못났으면서도 자신은 고상한 척하며 위선에 차 있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우리는 모두 숨어도 가난한 옷자락이 보이는 존재들..

자포자기

자포자기 인도의 민담입니다. 고매한 스승 밑에서 수행하던 제자가 스승에게 달려왔습니다. “스승님, 드디어 제가 물 위를 걸어서 강을 건널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러자 스승이 말했습니다. “애 많이 썼구나. 그런데 이 강을 건너는 뱃삯이 얼마더냐?” “20루피입니다.” 스승이 말했습니다. “너는 20년 동안 그 고생을 하고 20루피를 번 것이니라.”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거의 경지에 오른 제자 하나가 스승에게 물었습니다. “스승님, 어떻게 하면 하늘을 날 수 있습니까?” 스승이 답했습니다. “하늘을 나는 일은 새들에게나 맡겨 두세나.” 어떤 사람이 걸어서 강을 건너고, 새들처럼 하늘을 날아다닌다면 그는 초능력자일까요, 아니면 질서 파괴자일까요. 아니 그보다 인생을 허비한 사람이라는 표현이 옳을 것입니다..

자라투스트라의 비극

자라투스트라의 비극 “짜라투스트라여, 그대는 아직도 살아있는가. 왜? 무엇 때문에? 무엇에 의해? 어디로? 어디에? 어째서? 아직까지도 살아 있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닌가.” F W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홍신문화사·145∼146쪽)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C S 루이스는 현세대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시대는 존재의 깊은 질문을 던지지 않고 무관심하다. 오직 어떻게 해야 성공할 것인지 고민할 뿐이다.” 세상에서 제일 어리석은 인생 둘이 있습니다. 하나는 영원과 진리에 대한 관심이 없는 인생이고, 둘째는 영원과 진리에 대한 관심은 있지만 옳지 않은 것에서 답을 찾으며 헤매는 인생입니다. 니체는 영원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습니다. 왜, 무엇 때문에, 무엇에 의해, 어디로, 어디에, 어째..

헤어짐의 예절

헤어짐의 예절 “떠나고 난 후에 보면 떠난 새가 제대로 보인다. 서투른 새는 나뭇가지를 요란하게 흔들고 떠난다. … 노련한 새는 가지가 눈치채지 못하게 흔적도 없이 조용히 떠난다. 떠나가도 늘 앉아있는 듯한 착각 속에서 가지에게 포근한 무게를 느끼게 한다.” 시인 방우달의 시 ‘서투른 새 노련한 새’입니다. 만남만 있는 인생은 없습니다. 인생은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입니다. 그러기에 만남의 예절도 소중하지만, 헤어짐의 예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앞모습도 아름다워야 하고, 뒷모습에도 향기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나뭇가지일 수 있고, 새가 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새가 되어 떠날 때 나뭇가지를 얼마나 요란하게 흔들었는지, 아니면 포근한 무게를 주었는지. 헤어짐의 예의는 만남의 예의와 같은 무게입니..

사랑을 사랑하는 사람

사랑을 사랑하는 사람 “그녀는 아마 사랑을 사랑한 것이다.… 이것은 거울에 비친 사랑이다. 감정을 자아내는 애정의 대상보다는 감정적인 열정에서 더 많은 쾌감을 도출하는 것을 뜻한다.” 알랭 드 보통이 쓰고 공경희가 번역한 ‘우리는 사랑일까’(은행나무, 73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사랑이 너무 아프다고, 더 이상 사랑을 않겠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배탈이 한번 나서 더 이상 밥을 안 먹겠다는 말과 같습니다.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 ‘사랑을 사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기 관념과 욕망의 그림자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삶은 진짜다(Life is real).’ 미국 시인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우의 유명한 시입니다. 삶은 추상적이지 않고 쓰리고 아픈 게 많은 리얼 그 자체입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리얼합니..

꽃이 의자에 앉아 있어요

꽃이 의자에 앉아 있어요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시인 이정록의 시 ‘의자’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같은 꽃을 보더라도 여자의 눈에는 낭만으로, 한의사의 눈에는 약재로, 가수의 눈에는 노래로, 시인의 눈에는 시로 보입니다. ‘+’를 보고 수학자는 덧셈이라 하고, 낙심했던 사람은 희망이라 하고, 총잡이는 가늠자라고 하고, 성도는 십자가라고 합니다. 그 사람의 관심이 그 사람의 시각이 됩니다. 허리가 아픈 사람은 꽃도 의자에 앉아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게도 볼 수 있구나” 하는 의식의 확장이 소통의 시작입니다. 바울 사도는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됐다고 했습니다. 중심을 잃지 않은 상태에서 그들의 입장에서 서 본 것입니다. “꽃이..

허일

허일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 오후/ 파리 한 마리 손발을 비비고 있다/ 어덴지 크게 슬픈 일 있을 것만 같아라.” 이호우 시인의 시 ‘허일(虛日)’입니다. 내게는 특별한 일도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은 허사같은 하루였는지 모르지만, 누군가에겐 깊고 짙은 하루일 수가 있습니다. 무엇이 그리 슬픈지 무엇을 그리 잘못했는지 파리 한 마리가 저리도 손을 비비고 있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그대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어간 이들이 그토록 살고 싶어 하던 내일이다.” 랠프 왈도 에머슨의 말입니다. ‘오늘’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허일(虛日)은 없습니다. 이 세상에 아무 의미 없이 태어난 허생(虛生)도 없습니다. 우리는 우연히 이 땅에 ‘던져진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한 뜻이 있어 이 땅..

나의 장미꽃 한 송이

나의 장미꽃 한 송이 “꽃밭에 수천 수만 송이의 장미꽃이 있은들 무엇합니까?(중략) 내가 고깔 씌워준 장미 한 송이, 내 손안의 작은 물병 하나와 바꿀 수 없습니다. 내가 만난 사람, 시간을 주고 마음을 주며 내가 사랑하고 우정을 나눈 사람. 이 우주 안에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나의 장미꽃 한 송이입니다.” 고도원 저(著) ‘사랑하고 싶어서’(꿈꾸는 책방)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 보면, 지구에 온 어린 왕자가 수천 송이의 장미를 보고 실망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제껏 별에 두고 온 자신의 장미만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많은 장미를 보자 ‘멘붕’이 온 것입니다. 이때 현명한 여우가 이렇게 말합니다. “너의 장미꽃을 그토록 소중하게 만드는 건 그 꽃을 위해 네가 소비..

의심하라 모든 광명을

의심하라 모든 광명을 “눈앞의 저 빛! 찬란한 저 빛! / 그러나 저건 죽음이다 / 의심하라 모든 광명을!” 시인 유하의 시 ‘오징어’입니다.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바다로 배가 나아갑니다. 그리고 배위에 설치된 집어등(集魚燈)을 일제히 켭니다. 오징어들은 밤바다에 햇살처럼 내리쬐는 빛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미끼를 덥석 뭅니다. 시인은 곳곳에서 우리를 유혹하는 치명적인 ‘집어등’을 본 겁니다. 미끼는 가짜 빛. 빛나는 게 모두 황금은 아닙니다. “의심하라 모든 광명을!” 인생 미끼에 걸리지 않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자신이 태어난 사명을 굳게 바라볼 때입니다. 세례 요한에게 사람들이 다가와 큼직한 말, 미끼를 던집니다. “당신이 혹시 메시아가 아닙니까.” 집어등보다 더 큰 유혹, 강렬한 미끼입니다..

이름을 불러주시는 주님

이름을 불러주시는 주님 “그런데 고암 선생은 한 방에 있는 사람을 수번(囚番)으로 부르는 법이 없고, 부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자네 이름이 뭐야?’…” 신영복 저 ‘담론’(돌베개) 73쪽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감옥에선 이름 대신에 수감 번호를 부른다고 합니다.그런데 꼭 이름을 부르는 분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름이 ‘응일(應一)’이라고 했더니(이름에 한 일 자 쓰는 사람이 대개 맏아들이기에) ‘뉘 집 큰아들이 징역 와 있구먼’ 그러더랍니다. 이 말을 듣고 그는 그 날 밤 자기가 큰 아들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부모님과 누이동생을 생각하며 한숨도 잘 수 없었다고 합니다. 죄수로서가 아닌 자신의 참 존재성을 느낀 것입니다. 죄의 감옥, 욕망의 감옥 같은 이 세상에서 주님은 번호가 아닌 우리의 이름을 불러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