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김명혁칼럼 160

초대교회의 완성자 어거스틴 (8)

눈물을 폭포수처럼 쏟으면서 주님의 품으로 돌아온 ‘참회’의 어거스틴(386년 8월)! 세례를 받아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으로 태어난 ‘환희’에 넘친 어거스틴(387년 4월)! 그는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서 주님과 동족들을 섬기기로 결단을 했다. 복음을 제일 먼저 고향에 돌아가서 이웃과 동족에게 전하는 것은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방법이었고 사도들이 실천한 방법이었다. 길선주 목사는 평양에서, 한경직 목사는 신의주에서 처음 복음을 전했다. 그리고 어거스틴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사랑하는 어머니 모니카와 함께 하나님을 만나는 깊은 영적 교제의 ‘기쁨’을 누렸고 또한 어머니와 이별하는 극도의 ‘슬픔’을 경험했다. (387년 말) ‘참회’와 ‘환희’와 ‘기쁨’과 ‘슬픔’은 어거스틴 신앙에 거름과 자양분이 됐..

초대교회의 완성자 어거스틴 (7)

“기독교적 한거 생활과 세례” 개종 후인 386년 여름에 어거스틴은 가슴에 병을 앓게 됐다. 그 “가슴의 병”이 천식이었을 것이다. 그 때문에 음성도 변했고 웅변가로서의 일을 계속할 수 없게 됐다. 어거스틴이 기술한 대로 가슴은 교만의 안식처로 상징하는데 그 교만의 처소를 내리치는 고통을 당한 것이었다. 결국 어거스틴은 386년 9월 카시키아쿰(Cassiciacum)이란 시골로 내려가 소위 “기독교적 한거 생활”을 시작했다. 눈 덮인 알프스가 멀리 보이고 연못과 숲에 둘러 쌓인 카시키아쿰의 별장은 어거스틴에게 휴식과 함께 명상과 기도와 대화의 장소를 제공했다. 그곳에서 어거스틴은 6개월간 어머니 모니카와 아들 아데오다투스(‘신의 선물’), 친구 알리피우스, 그리고 그의 제자 리켄티우스 등과 함께 명상과 ..

초대교회의 완성자 어거스틴 (6)

어거스틴은 참회록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내가 밀란으로 온 것은 바로 암브로스 감독에게 온 것이었다.” (참회록, 5권 13장 23절). 이 한 마디 말 속에는 깊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는 여러가지 요소와 환경에 의해서 떠밀려 다니지만 결국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의 손 안에서 움직인다. 어거스틴이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는 데는 여러가지 도움들이 필요했다. 암브로스, 모니카, 폰티키아누스, 알리피우스 등이 그런 도우미들이었다. 어거스틴은 자기가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게 된 개종의 상황을 그의 참회록에서 계속해서 생생하게 기록했다. 참으로 귀한 참회와 개종의 고백이다. “개종” (하나님의 품으로)(2) “그러나 나는 여전히 내 죄의 포로인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비통하게 부르짖었습니다. ..

초대교회의 완성자 어거스틴 (5)

어거스틴은 참회록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내가 밀란으로 온 것은 바로 암브로스 감독에게 온 것이었다.” (참회록, 5권 13장 23절). 이 한 마디 말 속에는 깊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는 여러가지 요소와 환경에 의해서 떠밀려 다니지만 결국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의 손 안에서 움직인다. 어거스틴이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는 데는 여러 가지 도움들이 필요했다. 암브로스, 모니카, 바울 서신, 폰티키아누스, 알리피우스 등이 그런 도우미들이었다. “개종”(하나님의 품으로)(1) 어거스틴이 384년 가을 밀란에 도착한 후 암브로스를 만난 것은 의미심장한 사건이었다. 암브로스는 감독으로서 형식적으로 인사하지 않았고 아주 친절하게 어거스틴을 맞아 주었다. “나는 내게 친절을 보여준 그를 처음으로 사랑하게 되었..

“초대교회의 완성자 어거스틴” (4)

내가 교회사를 전공할 수 있었고 특히 어거스틴을 전공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학문과 사역과 인생과 관련하여 나에게 주어진 가장 큰 축복이었다. 세상과 역사를 바라보는 ‘균형 잡힌’ 시각과 ‘양면성적’ 사고를 나에게 가져다 주었기 때문이다. 지난번 어거스틴의 ‘출생과 소년시절’ ‘청소년 시절’에 대해서 살펴보았고 어거스틴이 마니교의 함정에 빠져서 9년 동안 (373-382) ‘마니교의 추종자’로 지냈다는 이야기를 했다. "로마와 밀란으로" 어거스틴은 382년에 칼타고를 떠나야만 했다. 그는 마니교에 환멸을 느꼈고 칼타고에서 난폭한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싫증이 났기 때문이었다. 또한 이 무렵 로마에 있는 어거스틴의 가까운 친구들이 어거스틴에게 ‘더 나은 수입’과 ‘더 높은 명예’를 약속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

초대교회의 완성자 어거스틴(3)

내가 교회사를 전공할 수 있었고 특히 어거스틴을 전공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학문과 사역과 인생과 관련하여 나에게 주어진 가장 큰 축복이었다고 말했다. 세상과 역사를 바라보는 ‘균형 잡힌’ 시각과 ‘양면성적’ 사고를 나에게 가져다 주었기 때문이다. 지난번 어거스틴의 ‘출생과 소년시절’ 그리고 ‘청소년 시절’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어거스틴이 19살 되던 해인 373년에 심각한 종교적 ‘회심’(conversion)을 경험했다고 했다. 시세로의 호르텐시우스(Hortensius)를 읽으면서 갑자기 세상의 모든 소망이 무가치하게 보여졌고 가슴이 이상하게 뜨거워지면서 불멸의 지혜를 갈구하게 되었다고 했다. 애지 추구에 불붙은 어거스틴이 지혜를 찾기 위해 관심을 돌이킨 곳이 성경이었고 교회였지만 어거스틴은 실망하고 ..

“초대교회의 완성자 어거스틴” (2)

내가 교회사를 전공할 수 있었고 특히 어거스틴을 전공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학문과 사역과 인생과 관련하여 나에게 주어진 가장 큰 축복이었다고 말했다. 세상과 역사를 바라보는 ‘균형 잡힌’ 시각과 ‘양면성적’ 사고를 나에게 가져다 주었기 때문이다. 지난번 어거스틴의 ‘출생과 소년시절’에 이어 오늘 어거스틴의의 ‘청소년 시절’에 대해서 살펴본다. 어거스틴은 참으로 진솔한 사람이었다. 어거스틴의 「참회록」은 그의 출생 때부터 저술 당시까지의 그의 전 생애의 내면 생활을 적나라하게 파헤쳐 묘사한 ‘영혼의 자서전’이었는데, 그는 「참회록」을 저술하면서 그 초두에서 하나님께 이렇게 고백했다. “그러면 제가 말씀 드리겠습니다. 먼지와 재 같은 제가 말씀 드리겠습니다. 제가 말씀 드리는 것은 사람에게 드리는 것이 아..

초대교회의 완성자 어거스틴 (1)

강변교회 김명혁 목사의 교회사 이야기(18) 내가 교회사를 전공할 수 있었고 특히 어거스틴을 전공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학문과 사역과 인생과 관련하여 나에게 주어진 가장 큰 축복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교회사와 어거스틴을 전공하게 된 배경에는 한경직 목사님과 한철하 박사님이 계셨다. 어거스틴은 고대가 낳은 가장 위대한 신앙의 인물이었다. 그는 젊은 시절을 지혜와 행복을 추구하며 육체의 향락과 이단 사교와 희랍 철학 등에 탐닉해 보았으나 아무 것도 그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했다. 어거스틴은 결국 어머니의 눈물의 기도로, 바울 서신을 읽는 가운데 하나님의 품 안에 안기므로, 참된 평안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32세 때 무화가 나무 밑에서 개종의 체험을 한 이후 76세 때 히포의 감독으로 세상을..

“예수님은 누구신가?”

"인간인 동시에 신적인 존재로” 삼위일체가 하나님의 삼위의 신비를 이해하려는 지적인 시도(an intellectual attempt)라고 한다면, 기독론이란 그리스도의 양성 즉 신성과 인성과의 관계를 이해하려는 지적인 시도라고 하겠다. 기독론적 질문을 제일 먼저 던진 분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마16:15) 라는 질문을 던졌다. 신약이 기독론을 체계적으로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예수님을 인간인 동시에 신적인 존재로 묘사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육체를 따라" 알았다고 했고 예수님을 "랍비" 즉 선생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동시에 제자들은 예수님에게서 신적 특성을 발견했다. 그의 신적 특성은 그의 부활에 의해 강하게 드러났다. 그래서 도마는 부활하신..

하나님은 누구신가?

강변교회 김명혁 목사의 교회사 이야기(15) ▲김명혁 목사(강변교회 담임,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 초대교회에 나타난 가장 중요하고 심각한 신학적 주제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관한 주제였다. 그들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바로 알기 원했던 것이었다. 사람은 신자이든 불신자이든 누구나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종교성을 지니고 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신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솔로몬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전3:11)고 기록했다. 사람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길이 몇 가지가 있다. 첫째, 자연 만물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존재를 더듬어 살피는 길이 있다. 둘째, 사람 자신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존재를 더듬어 살피는 길이 있다. 이 두 가지 길을 '자연 계시'의 길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