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기독교개혁신보컬럼 671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담긴 함의 / 노승수 목사(강남성도교회)

“믿음은 특별계시 통해 계시자이신 하나님을 대면하여 아는 지식” 칼뱅은 믿음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라고 말합니다. 이때 지식은 하나님에 관한 지식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대한 지식을 포함합니다(기독교강요 3권 2장 2절). 그런데 칼뱅이 이 표현을 할 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지식과는 좀 차이가 있습니다. 그의 시대에 지식이란 대상과 인식 사이의 일치를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지식은 그 기초가 우리 인식에 있습니다. 이전 시대의 자연스런 전제였던 대상 세계가 우리 인식으로부터 도려내어진 것입니다. 데카르트가 지식의 기초를 우리가 지닌 회의적 인식에 놓은 후부터 모더니즘과 후기 모더니즘은 지식으로서 전체 세계를 자기 내적인 체계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후기 모더..

“교회의 진정한 개혁과 행진의 대열에 합류하라!” / 변세권 목사(온유한교회)

“언약 체계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될 새 언약을 계시하는 모형” 가을이 깊어 간다. 이 계절에 인간적 고독과 사색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지나친 환상과 낭만은 우리의 기본 자아를 무너뜨리기 쉽다. 동서양을 무론하고 교회가 많이 타락해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즉각적인 심판을 유보하시면서 남은 자들을 부단히 일깨워주고 계시는 이 현실 앞에서 이제 진정 우리는 좀 더 개혁적인 삶을 살아야한다. 교회의 진정한 개혁과 행진은 나라고 하는 자기 자신의 적극적인 믿음의 행보 위에서만 이루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라도 자기 자신을 예외라고 하는 저주스러운 함정에 스스로 빠뜨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항상 책임 있는 삶을 살고 있는가에 대해 부단히 자기 자신을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언약의 관점..

‘n분의 1시대’ / 이은상 목사(동락교회)

“김영란법 핑계로 獻身(헌신)을 獻心(헌심)으로 포장할까 염려돼” 초등학생들이 대형수족관을 견학하러 갔다. 투명한 수족관 속에서 스킨스쿠버가 송사리들에게 먹이를 뿌려주고 있었다. 이 때 갑자기 한 아이가 소리쳤다. ‘야 뇌물 먹는다 뇌물.’ 잠시 후 이번에는 스킨스쿠버가 큼직한 다랑어에게 먹이를 뿌렸다. 아이가 다시 소리쳤다. ‘떡값 먹는다 떡값.’ ‘그게 대체 무슨 소리지?’ 인솔 선생님이 아이에게 물었다. ‘우리 아빠가요 송사리가 먹는 것은 뇌물이고 큰 놈들이 먹는 것은 떡값이래요.’ 사람은 누구나 선물받기를 좋아한다. 그렇지만 받지 말아야 할 선물, 즉 댓가성인 뇌물이 있는가 하면, 받아서 가슴 뿌듯한 감동이 오는 감사의 선물이 있다. 그렇다면 뇌물과 선물의 구분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아주 어려..

그리스도인의 양심의 자유 / 김영규 목사(개혁주의성경연구소 소장)

“신자들은 비복음적인 것들에 저항할 수 있는 자유 가지고 있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는 무오한 진리로서 신적인 권위를 가지되 그 권위가 인간에게 의존하거나 교회에게도 의존하지 않는 오직 성경에 따라 자연 속에 있는 자유에 대한 강조가 고백으로 나타나 있다. 하나님의 택자들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구원이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그 방식 혹은 길에 대한 고백에 앞서서도 인간의 자유 의지에 대한 고백이 하나의 장으로 고백되었다. 그리고 성도들의 보존에 대한 고백과 은혜와 구원의 보증에 대한 고백 이후 십계명으로 대표되는 도덕법에 대해서 은혜 아래 중생된 자들의 경우 더 강화된 성격을 강조한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고백에 이어 그리스도인들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에 대한 고백이 뒤따르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옛 교회인..

무엇을 심고 무엇을 거두고 계십니까? / 안두익 목사(동성교회)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채워가는 지혜자들이 되기를”’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 죽어서 아름다울 것인가, 살아서 더러울 것인가?” 이 말은 김훈 씨가 쓴 이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소설가 김 훈 씨가 쓴 이라는 책을 보면 1636년 12월 14일 인조는 청나라의 침략을 피해 급히 남한산성으로 피신합니다. 그곳에 머무는 47일은 가장 혹독하고, 치욕스러운 겨울이었습니다. 한겨울이라 가진 것도, 먹을 것도 변변치 못합니다. 그렇다고 나가서 싸울 수도 없는 형편입니다. 고립무원의 성에서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참담하고 고통스러운 나날이 계속 됩니다. 어떻게 할 것인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쓰러진 왕조의 들판에도 대의는 꽃처럼 피어날 것이라며 결사항쟁을 고집한 척화파 김상헌, 역..

사람의 권위와 하나님의 권위 / 남웅기 목사(바로선교회)

“어느 경우든 총대들은 노회 대의원으로서 먼저 하나님의 권위 더 높여야” 제가 목회를 29년째 하면서 얻은 것은 깨달음밖에 없습니다. 그것도 절실한 깨달음이요, 확실한 깨달음입니다. 바로 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에서 비롯된 권세라고도 하겠습니다. 이러한 깨달음은 목회의 연륜에서 얻어진 것도 아니요, 특별한 영성으로 말미암음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예외 없이 경험하게 되는 첫 번 은혜가 바로 하나님의 권위인 줄 믿습니다. 제가 아둔해서 그렇습니다. 다른 목사님 장로님들은 이미 일찍이 깨달은 부분인 것을, 저는 이제야 뒤늦게 깨달았다면서 이렇게 글로서 설레발 치고 있으니 스스로도 이 민망함과 쑥스러움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이미 내친 글이니 계속하겠습니다. 제가 노회 안에서 목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선수들을 지지합니다/ 최광희 목사(행복한교회)

“이해할 수 없는 종교자유정책연구원의 몽니는 지탄받아야” 2016년 리우 올림픽이 17일 만에 막을 내렸습니다. 많은 태극 전사들이 땀 흘리며 싸웠고 온 국민들은 밤을 새우며 응원했습니다. 전 종목 금메달을 석권한 종목도 있었고 아쉽게도 메달을 놓친 종목도 있지만 그 기간 동안에 우리 국민들은 모두 하나가 되었습니다. 특히 꼭 이겼으면 하는 경기에서 월등하게 이겼을 때는 우리 모두 짜릿한 기쁨을 누렸고 아쉽게 패배했을 때는 다 함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런데 이런 기쁨에 찬물을 끼얹는 단체가 있어서 우리의 기쁨이 반감되기도 했는데 바로 종교자유정책연구원(종자연, 이사장 박광서)이라는 단체입니다. 리우 올림픽 개막식에 앞서 열린 피지와의 축구 조별리그 1차전에서 석현준 선수가 기도 세레모니를 한 것에 대해..

함께하는 교육 / 손종국 목사(청소년교육선교회 대표)

“관계 형성에 실패한 교사는 바람직한 제자의 삶 가르칠 수 없어” 오래 전에 총신 신대원에서 청소년교육 과목을 가르칠 때였다. 용인에 강의를 하러 간 어느 날 김의원 교수가 불러서 방에 갔더니 누가 선물했다며 꿀을 한 병 주셨다. 당신은 꿀을 싫어하니까 나보고 가져가서 먹으라는 것이었다. 당시 학교에서 만날 수 있었던 예전의 두 분 스승이 계셨는데 김의환 총장님은 고등부 때 교회 담임목사님이셨고 그 다음 총장이셨던 김의원 교수님은 전도사님이셨다. 아마 고등부 수련회 동안 회심을 하고 진로를 수정하면서 신학을 선택한 것은 두 분의 영향이었을 것이다. 다음 해 고등부 3학년 때 담임이셨던 이정석 교수는 대학시절을 함께한 좋은 선배이자 기도의 동지였고 멘토였다. 역시 개인성경공부 방법을 알게 해주시고 어린 학..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 않는 이단 경계 / 유영권 목사(빛과 소금의 교회, 총회이대위원장)

“신학과 현장의 경험과 인격이 균형을 이룬 이단 전문가 양성해야” 필자는 이대위원이고, 이대위 위원장이다. 누구라도 이단에 대해 물으면 답할 자료들을 가지고 다니지만, 나를 만나는 사람들 중에 이단에 대해서 묻는 목회자 혹은 성도의 수가 많지 않다. 필자의 이단 지식에 대한 불신일까? 아니면 이단 자체에 대한 무관심일까? 아니면 스스로 이단으로부터 자신과 교회를 지킬 수 있는 자신감일까? 이단에 대해 궁금한가? 이단에 대해 진지하게 문의한 적이 있는가? 시간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눈물로 상담을 호소하는 교회, 가정, 성도들이 있다. 이미 상상할 수 없는 피해를 입은 경우이다. 피해를 입기 전의 무관심의 정도와 피해를 입은 후의 간절함이 극과 극을 달린다. 일반적인 이단에 대한 막연한 자세 통계청 자료를..

술이부작(述而不作) / 이동만 목사(대구 약수교회)

“거짓 선지자들은 계시를 청중들의 기호에 따라 선택적으로 선포해” 과거에 존재했던 위대한 유산을 기술(記述)할 뿐 새로 창작하지 않는다는 술이부작(述而不作)이라는 말은 논어 술이편 1장에 나온다. 술(述)은 옛 것을 풀이하다, 작(作)은 새로운 것을 지어 만들다의 뜻이다. 사상가요, 교육자로서의 공자는 많은 현명한 제자들을 가르치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기는 했으나 독창적인 사상을, 독립된 저작으로 짓지는 않았는데 위의 말은 이를 토로한 것이다. 이 말을 보면서 설교하는 사람도 술이부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설교자에게는 성경(위대한 유산)이 주어져 있으므로, 성경을 기술할 뿐(전달할 뿐) 창작하지 않는다(설교자 자신의 말을 하지 않는다). 감히 설교자가 창작을 한다고 할 수 있을까? 새로운 성경을 만드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