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인문학을 하나님께

최영섭 「그리운 금강산」 / ‘잊지 않겠습니다.그 사랑을 이어가겠습니다.’ / 한재욱 목사

새벽지기1 2025. 6. 7. 05:48

인문학의 주인은 하나님, 인문학을 하나님께!
오늘은 한상억 작사, 최영섭 작곡의 가곡 「그리운 금강산」을 하나님께 드리며

‘잊지 않겠습니다.그 사랑을 이어가겠습니다.’라는 주제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누구의 주제런가 맑고 고운산 /

그리운 만이천봉 말은 없어도 /
이제야 자유만민 옷깃 여미며 /

그 이름 다시 부를 그리운 금강산 /
수수만년 아름다운 산 못가 본 지 몇몇 해 /

오늘에야 찾을 날 왔나 / 
금강산은 부른다 /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산이 있습니다.  
“맑고 고운 산” 금강산은 단지 북녘에 위치한 풍경 좋은 산이 아닌, 우리가 지켜야 할 민족의 정체성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누구의 주제런가 맑고 고운산” 그 산을 지키기 위해 스무 살 아버지는 총을 들었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등 뒤에 숨긴 채 적과 마주했습니다. 금강산엔 아버지의 군화 자국이 바위에 남아 있습니다. 고요한 능선마다 “잘 다녀 올께요.” 그 한마디, 사라진 목소리가 흐릅니다. 금강산의 바람은 아직도 그날의 목소리를 품고 있습니다. 돌아오지 못한 이들의 시간이 산에 멈췄습니다.


 아버지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이 지키는 건 단순한 산이 아니라 조국이고, 가족이고, 후손들이 “자유만민 옷깃 여미며” 살아갈 터전이라는 것을. 총성이 멎은 곳엔, 이름 모를 꽃들이 피었습니다. 그가 지켜낸 산이, 오늘도 말없이 우리를 부릅니다.  
 가곡은 말합니다. 그 산은 지금도 거기 있다고. 우리는 지금‘그 산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 산을 볼 수 없어서’그리워합니다. 보이지 않아도 그리운 것은, 여전히 우리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에야 찾을 날 왔나” 찾지 못한 산이 아니라, 잊지 못한 산입니다.


 그리움은 잊지 않는 용기입니다. 세상은 잊으라 하지만 사랑은 끝내 잊지 못하는 그 무엇입니다. 그리움이란, 잊은 적 없다는 사랑의 다른 말입니다. 이 노래는 잃어버린 반쪽을 향한 기도요, 잊지 않겠다는 다짐입니다. 
 나라 사랑은 특별한 날에만 꺼내는 묵은 장롱 속의 한복이 아닙니다.
 나라 사랑은 거창한 말보다, 잊지 않는 마음 하나로 시작됩니다. 우리가 딛고 서 있는 이 땅 한 평 한 평이 누군가의 눈물과 땀으로 지켜진 것임을 기억하는 마음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9장 3절에서 이런 고백을 하였습니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롬9:3)

 바울은 하늘에 속한 자였지만, 땅을 등지지 않았고, 영원을 품었지만 민족을 잊지 않았습니다. 민족을 초월하지만, 결코 민족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복음과 민족을 함께 품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던 그의 발끝엔 여전히 고향 땅의 흙냄새가 배어 있었습니다. 바울은 복음의 사도였지만, 동시에 자신의 동족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금강산은 멀지 않습니다. 그리움이 닿는 곳에 있습니다.
 그리움은 슬픔이 아닙니다. 끝까지 사랑하겠다는 다짐입니다.
 그리움은 멈춘 시간이 아니며, 계속되는 현재의 사랑입니다.
그리하여 “그 이름 다시 부를” 그날을 꿈꾸며, 우리는 남과 북 모든 땅에서 찬양이 울려 퍼질 날을 소망하며 오늘도 눈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