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제가 무엇이라고? (3:7-12) / 김영봉 목사

새벽지기1 2025. 5. 3. 06:42

해설:

당신이 누구인지를 소개하신 다음,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타신 이유를 알리신다. 그분은 히브리 사람들을 “이집트에 있는 나의 백성”(7절)이라고 표현하신다. 하나님에게는 모든 인류가 “나의 백성”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든 인류의 구원을 위해 선택 받았다는 점에서 하나님에게 특별하다. 바로의 지독한 폭정 아래에서 시달리면서 히브리 사람들은 하나님에게서 버림 받았다고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고통에 함께 하고 계셨다. “똑똑히 보았다”, “부르짖는 소리를 들었다”, “고난을 분명히 안다”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고통을 겪고 계셨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2장 23-25절에서 3인칭으로 묘사된 사실이 여기서 1인칭으로 표현되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고통을 겪으며 임계점에 이르기까지 기다리셨다.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려면 그 과정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제 그 임계점에 이르렀고,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켜 “젖과 꿀이 흐르는 땅”(8절, 다산과 풍요의 땅)으로 인도하실 계획이다. 그 땅에는 여러 민족들이 살고 있다. 그 민족들을 몰아내고 이스라엘 백성을 그곳에 살게 하시는 이유는 그들의 악행으로 인해 그 땅이 “그 거주자들을 토해내게 되었기”(레 18:25)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고통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말씀하시면서(9절) 모세를 바로에게 보내겠다고 하신다(10절). 40년 동안 미디안 광야에서 목자로 살면서 한 개인으로서 소소한 행복을 즐기며 살아가던 모세에게 이것은 너무도 갑작스럽고 충격적인 명령이었다. 모세는 "제가 무엇이라고, 감히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겠습니까?"(11절)라고 반문한다. 그에게는 민족에 대한 애정이 있었지만, 40년 전에 그 일로 인해 큰 낭패를 보고 도피자가 되어 버렸기에 자신이 그럴 만한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자 하나님은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12절)라고 답하신다. "네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는 것이다"라는 뜻이다. 그분은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킨 다음에 그가 선 바로 그 자리에서 백성과 함께 예배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신다. 그것이 그에게는 하나님이 그를 “보냈다는 징표”가 될 것이라는 뜻이다.

 

묵상: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계획을 밝히시면서 바로에게 가라고 말씀하시자, 모세는 단박에 “제가 무엇이라고, 감히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세 이끌어 내겠습니까?”(11절)라고 반문합니다. 앞으로 보겠지만, 모세는 하나님의 부름에 순종하기까지 여덟 번이나 회피하고 거부하고 저항합니다. 

 

모세가 그렇게 반응한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절대 제국의 절대 권력자인 바로에 비하면 그는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미 늙었고, 홀홀단신의 양치기였습니다. 게다가 그는 살인을 행하고 도피한 신세입니다. 공소시효 같은 개념이 없던 그 시대에 그것은 스스로 감옥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과 같았습니다. 

 

모세는 자신에게 해방자로 나설만한 아무런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에게는 그것이 가장 중요한 자격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할 계획은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시작하시고 그분이 이루실 일입니다. 따라서 그분에게는 철저히 자신을 의지하고 순종할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사십 년 동안 미디안 광야에서 쪼그라들대로 쪼그라든 모세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분에게 인간적인 열정과 힘이 필요했다면, 사십 년 전, 모세가 미디안으로 피신 왔을 때, 그를 찾으셨을 것입니다. 그의 마음에 가득 차 있던 적개심에 불을 지르면, 그는 물불 안 가리고 바로에게 맞서려 했을 것입니다. 만일 그랬다면, 그는 반역자로 비참하게 처형되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 일에 성공했다면, 그는 자신의 왕국을 세우려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제가 무엇이라고?”라고 반응했을 때 속으로 기뻐하셨을 것입니다. ‘이제, 너를 사용하기에 충분히 준비되었구나!’ 하고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말한 대로, “내가 약할 그 때에, 오히려 내가 강하기 때문입니다”(고후 12:10).

 

기도:

주님, 때로 저희는 무엇이나 되는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주님께서 보시기에 얼마나 가소롭고 또 얼마나 위태로워 보일까요? 자고 일어나면 어느 새 다시 고개를 쳐드는 옛 자아를 다시 내어 드립니다. 저희 자신을 부정하고 주님께 전적으로 의지하게 해주십시오. 그래서 저희의 계획이 아니라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주십시오. 주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