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이야기는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 생활한 지 사십 년 후로 건너 뛴다. "하나님의 산 호렙에 갔을 때"(1절)라는 말은 미디안 사람들이 호렙 산을 신령한 장소로 여겼다는 뜻일 수도 있고, 모세가 그곳에서 자주 하나님을 찾았다는 뜻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는 광야에서 지극히 사적인 삶을 살면서도 하나님을 기억하고 예배했다는 뜻이다. “호렙”이라는 이름은 “버려진 땅”이라는 의미다. 모세를 통해 버려진 땅이 하나님의 산으로 변모했다. 호렙 산은 나중에 모세가 십계명과 율법을 받은 시내 산을 가리킨다.
그러던 어느 날, 모세는 그곳에서 이상한 광경을 본다. 풀섶에 불이 붙어 있기에 다가가 보니, 불은 붙었는데 나무가 타지 않았다(2절). 그 이유에 대해 저자는, “주님의 천사”가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상하게 여겨 더 가까이 다가가니, "모세야! 모세야!"(4절)라는 음성이 들린다. 이름을 두 번 부르는 것은 애정의 표현이다. "예,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는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전형적인 반응이다.
그러자 하나님은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너는 신을 벗어라"(5절)고 하신다. 호렙 산이 거룩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서 있기 때문에 거룩해졌다. 거룩한 곳에 서면 인간은 자신의 죄성에 눈 뜬다. 신발은 한 사람의 존재를 담고 있는 그릇이다. 따라서 신발을 벗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담고 있던 허물을 벗어 놓는 상징 행동인 셈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벌거벗은 존재로서 당신 앞에 서라고 요청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을, 아브라함을 불러내시고 조상들과 함께 하신 분이라고 소개하신다(6절). 이 말씀으로써 하나님은 모세의 정체성을 상기시키시고 확인해 주신다. 한 개인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의 한 사람이었다. 말로만 듣던 족장들의 하나님 앞에 서게 되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 모세는 두려움에 압도되었다.
묵상:
모세는 사십 년 동안 이집트의 궁궐에서 왕자의 신분을 누렸습니다. 그는 자신이 중요한 존재이며 앞으로 중요한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살인을 저지른 후에 미디안 광야로 도피하여 양치기로 살아갑니다. 텅 비고 낯선 땅에서 그는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님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아무 것도 아닌 존재로서의 삶에 적응하는 것은 또 다른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시기까지 사십 년이 걸린 이유는 왕궁에서 살면서 그의 의식 속에 배어든 모든 특권 의식이 사라지고 철저히 낮아지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다는 뜻일지 모릅니다.
사십 년 후,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나타나셔서 신발까지 벗으라고 요구하십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벗어 놓으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앞에 철저히 무익하고 무력한 존재로 서라는 뜻입니다. 그랬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자신이 누구이신지를 알립니다. “나는 너의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6절)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자기 소개이기도 하지만 모세에게 새로운 정체성을 알리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사십 년 후, 모세는 모든 것을 잊고 철저히 사적 존재로서 연명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자신이 족장들의 하나님이라고 소개하십니다. 이렇게 말씀하심으로써 모세는 외따로 떨어져 있던 한 개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속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우쳐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신 곳의 이름이 호렙이었다는 사실을 의미심장합니다. “호렙”은 “버려진 땅” 혹은 “쓸모없는 땅”이라는 의미입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사십 년 동안의 양치기 생활을 통해 자신을 버려진 존재 혹은 쓸모 없는 존재로 여겼을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찾지 못하면 누구든 그런 생각에 빠집니다.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자신의 참된 정체를 발견하고 자신의 쓸모를 찾는 일입니다.
기도:
하나님, 잃어버린 퍼즐 조각 같은 저희를 찾아내시어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참여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을 떠나 미아처럼 유리 방황하던 저희를 찾아내시어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시켜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버려진 땅, 쓸모없는 땅, 부정한 땅에 살던 저희를 거룩한 땅에 서게 하시고 쓸모를 찾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값없이 주신 이 은혜,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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