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를 드릴 의무가 있다는 것,
산란해진 나의 마음에 이제는
하나님을 생각할 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며,
최소한 잠시 한 순간만이라도 에고(ego)를
고려하지 않을 시간이 있다는 것에 대해
나는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한가!
하나님의 뜻의 질서에 속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행복이다. (188쪽)
헤셸은 젊었을 때 독일 베를린에 가서 철학을 공부했다.
공부를 하면할수록 만족할 수 없는 어떤 한계를 느꼈다.
철학은 선(善)에 대해서 말하는데,
자신의 관심은 거룩함에 있었기 때문이다.
철학자는 자연주의자가 될 수 있지만 기도하는 사람이 될 수는 없다.
철학자는 휴머니스트가 될 수는 있지만 영성가가 될 수는 없다.
철학은 사유하는 자기라는 주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신앙은 사유의 대상인 하나님에게 궁극적인 관심이 있다.
헤셸은 거룩함에서만 참된 평안을 느낄 수 있었다.
그 거룩함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하나님은 거룩함 자체다.
그래서 그분을 향한 예배는 당연하다.
예배는 복을 받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거룩함을 경험한 사람의 존재 이유다.
그 예배를 헤셸은 ‘하나님의 뜻의 질서’라고 표현한다.
내일은 주일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에고 너머의 거룩함과 만나는 예배를 드려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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