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5)
삶은 ‘사는 것’이라는 뜻이다.
순수한 우리말이다.
한자로는 생(生), 또는 생명(生命)이다.
영어 life, 독어 Leben이 이에 해당된다.
어원적으로 보면 삶은 숨과 연관된다.
숨을 쉬어야 삶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히브리어 루아흐와 헬라어 프뉴마는
영, 바람, 숨이라는 뜻이 있다.
우리나라 말과 어원적으로 비슷한 구조다.
삶은 생명, 살아있음의 문제다.
루아흐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해야겠다.
고대인들은 바람을 생명의 근원으로 생각했다.
오늘 우리에게는 그런 경험이 없다.
우리가 세상을 계량적 차원에서,
또는 실증주의적 차원에서만 보기 때문이다.
바람 현상에 대한 물리적 정보에 머물러 있다.
이건 불행한 일이다.
단순한 정보에 불과하다.
그 정보라는 건 세상을 포장으로만 아는 것이지
실질로 아는 건 아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 정보도 변할 수밖에 없다.
내가 원당에 이사 온 뒤로는
바람을 더 민감하게 경험하게 되었다.
집 주위가 온통 나무다.
참나무, 대나무 등등,
그리고 풀들이 많다.
그것들이 흔들린다.
그걸 보고 바람이 분다고 생각한다.
바람을 느끼지는 못해도 잎이 흔들리는 걸 보고
바람이 부는구나 하고 미루어 짐작한다.
나무와 풀들이 흔들리는 모습은 신비롭기 짝이 없다.
고대인들은 그걸 더 실감했을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이 세상에 가득하다는 사실 앞에서 놀라워했다.
그 어떤 힘을 고대 히브리인들은 루아흐라고 불렀다.
루아흐는 생명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능력이었다.
자신들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힘이었다.
그들은 죽음까지 포함한 생명 현상을
놀라운 눈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거룩한 두려움에 종종 사로잡혔다.
현대인들은 바람의 물리적 정체를 알기에
더 이상 바람을 영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고대인들의 그런 영적 경험은
오늘 우리에게 똑같이 필요하다.
그것은 삶의 신비로운 차원에 대한 통찰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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