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묵상

화를 자취한 자의 최후 (왕하14:1-16) / 신동식목사

새벽지기1 2024. 9. 28. 06:30

유다의 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가 25세에 왕이 됩니다. 그리고 29년을 통치합니다.


아마샤에 대한 평가는 분명합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정직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다윗처럼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였습니다. 그의 아버지 요아스의 길을 따랐지만 산당을 제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유다의 사람들도 산당에서 제사를 하였습니다. 불완전함은 시간이 지나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아마샤 통치 기간에 나라는 건강하게 세워졌습니다. 아마샤는 부친인 요아스를 죽인 신복들은 다 숙청하였지만 그 자녀들을 율법에 따라 숙청하지 않았습니다. 피의 보복을 멈추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자신만만한 아마샤는 소금 골짜기에서 에돔과 전쟁을 하고 대승을 거둡니다. 이때 에돔의 군대 일만명이 죽습니다. 그리고 셀라를 취하고 욕드웰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합니다.

내치와 외치에 있어서 승승장구하였던 아마샤는 더 큰 욕망을 드러냅니다. 그것은 북이스라엘을 점령하고 이스라엘을 통일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래서 북이스라엘의 왕 요아스에게 전쟁을 선포합니다.

요아스는 아마샤의 교만에 감히 레바논의 가시나무가 백향목에게 대든다고 말하면서 레바논의 들짐승이 가시나무를 짓 밟았다고 조롱합니다.

이스라엘 요아스는 아마샤가 에돔과의 전쟁에 서 승리하였다고 교만하여졌음을 지적합니다. 스스로 영광이나 챙기고 자기 집으로 돌아갈 것이지 어찌하여 화를 자초하여 유다와 함께 멸망하려고 하느냐고 비웃습니다.

그러나 이미 교만이 가득한 아마샤는 요아스의 말을 듣지 않고 벧세메스에서 요아스를 대면합니다. 그리고 대패를 합니다.

요아스는 아마샤를 붑잡고 예루살렘으로 올라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벽 400규빗을 헐어버립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보관소에 있는 모든 은,금, 기명들과 유다의 사람들을 볼모로 삼고 사마리아로 갑니다.

한 지도자의 교만과 탐욕이 나라를 망하게 하고 백성들을 고통과 슬픔에 빠지게 합니다. 그러나 역사는 흘러갑니다. 아마샤도 죽고, 요아스도 죽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여로보암 2세가 왕위에 오릅니다.

교만은 넘어짐의 앞잡이이고 패망의 지름길입니다. 겸손은 하나님의 기쁨입니다(시149:4).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입니다(잠18:2). 잠언의 말씀은 아마샤에게 따금한 충고입니다.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잠 22:4)" 아마샤가 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그러나 아마샤는 듣지 않았고 결국 화를 자초하며 멸망에 이르렀습니다. 잘 나가던 인생이 하루 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이 모두 교만이 준 열매입니다.

믿음의 사람에게 겸손은 생명의 길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본성은 교만을 따라 삽니다. 겸손을 살 수 있는 것은 예수님께 연합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매고 내게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안식을 누린다고 약속하셨습니다.(마11;29)

겸손은 날마나 주 예수님을 믿는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알고 믿은 것을 날마다 입술로 고백할 때 겸손한 자리에 이르게 됩니다. 잠시라도 이 사실을 잊으면 혈기와 교만이 살아납니다. 저 역시 믿음의 길에서 이러한 슬픔을 얼마나 자주 겪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또 기도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날마다 예수님께 붙어있기를 간청합니다. 바울이 고백하였던 나의 나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이 얼마나 위대한지 모릅니다. 오늘도 이 믿음을 고백하며 겸손의 자리에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