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계에 처해서가 아니라 중심에서, 약함이 아니라 힘에서, 죽음과 죄책에서가 아니라 삶과 인간의 선에서 신에 대해 말하고 싶다. 한계에 설 때는 침묵하고 해결할 수 없는 것은 미해결로 두는 것이 좋다고 나는 생각한다. 부활을 믿는 것은 죽음의 문제의 해결이 아니다. 신이 피안에 있다는 것은 우리의 인식 능력이 피안에 있다는 것이 아니다. 인식론적 초월성은 신의 초월성과는 관계가 없다. 신은 우리의 삶 한 가운데서 피안적이다. 교회는 인간의 능력이 미치지 않는 곳, 한계에서가 아니라 마을의 한 가운데 있다.'(1944년 4월30일)
그대는 우상숭배와 참 신앙의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오? 구약성서가 그토록 강한 어조로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한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오? 우상숭배는 인간의 약점을 이용하는 종교적 태도라오. 현대인의 약점은 돈벌이와 출세요. 십일조 헌금을 드리면 물질적으로 더 큰 보상을 얻을 것이라는 가르침 앞에서 현대인은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소. 심지어 어떤 사람은 이렇게까지 강조하오. 십일조를 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다른 방식으로라도 물질을 빼앗는다고 말이오. 병원비로 나가든지 교통사고 합의금으로 나간다고 협박한다오. 인간이 약하기 때문에 통하는 일종의 얄팍한 상술이오.
본회퍼는 인간의 약함이 아니라 오히려 강함에서 하나님을 변증하고 싶다고 했소. ‘한계에서가 아니라 마을의 한 가운데’ 서겠다는 말이다. 정치, 교육, 경제 등, 삶의 현실들을 가리키오. 여기서 이런 의문이 들 거요. 본회퍼의 주장에 따르면 기독교는 정치적이어야 한다는 말이냐, 하고 말이오. 기독교와 정치의 차이는 무엇이냐, 하고 말이오. 결국 본회퍼의 신학은 해방신학이나 민중신학과 다를 게 없는 논리가 가능하오. 그가 목사 신분에 히틀러를 제거하는 결사대에 참여했다는 사실이 마치 라틴 아메리카에서 무장 투쟁에 나선 해방신학 신부들과 비슷하오. 이에 대해서 지금 내가 더 이상 설명할 여력이 없소이다. 훨씬 많은 자료를 통해서만 말할 수 있겠소. 다만 이렇게 본회퍼를 변호하는 것으로 마치겠소. 그는 인간의 실존적 불안과 두려움에 기대서 하나님을 초자아적인 슈퍼파워로 가르치는 기독교를 비판하는 거요. 그런 비판은 이미 포이에르바흐나 니체, 프로이드 등이 제시한 것이오. 특별히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사람들에게나 통할만한 논리로 창조와 종말의 하나님을 변증할 수는 없는 거요. (2010년 5월13일, 목요일, 대전신학대학교 특강을 다녀온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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