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가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막14:71)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는 말을 들어보십시오. “나는 너희가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참 점잖은 표현이군요. 수사학에 능한 당대의 웅변가가 상대를 설득하는 한 과정처럼 보입니다. 어부 베드로가 언제부터 이런 세련된 말을 구사했을까요? 마가복음 기자의 각색일까요? 이 자리에서 그런 편집과정을 따질 계제가 아니니 덮어둡시다. 어쨌든지 우리는 지금 본래의 투박하고 직선적인 성격과 말투를 숨기고 변호사와 같은 말투로 자기를 방어하는 베드로를 보고 있습니다. 사람은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한다고 하는데, 베드로의 경우가 바로 그런 순간일까요?
그 순간에 베드로의 표정을 어땠을까요?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겠지만 그가 연극배우가 아닌 한 불안한 기색을 완전히 감출 수는 없었을 겁니다. 예수님과 함께 생활한 지난 몇 년 간의 광경이 그의 기억에서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갔겠지요. 그는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출가를 한 사람입니다. 그 때의 감격이 얼마나 놀라웠을는지 상상이 갑니다. 병든 자가 고침을 받고 귀신 들린 사람이 회복될 때 그는 예수님에게서 질적으로 다른 생명을 경험했습니다. 그는 들떠서 자기의 믿음이 크다는 것을 자랑하듯이 큰 소리를 친 적도 많았습니다. 주님을 그리스도로 인식한 적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생명을 주신 ‘당신’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베드로는 예수님을 ‘이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아무 상관없는 ‘이 사람’일 뿐입니다. 이 사람은 대제사장 여종과 하인들의 입방아에 오른 인물일 뿐입니다. ‘이 사람’이라는 단어를 토해내는 바로 그 순간에 내면적으로 일그러졌을 베드로의 얼굴 표정을 그림으로 그려낼 화가는 없을 것 같군요. 베드로의 배신은 아무도 대신 경험할 수 없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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