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베드로의 울음(6)(막14:71)

새벽지기1 2024. 3. 12. 03:03

'그러나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가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막14:71)


 

세 번이나 거듭해서 “당신은 예수와 한 통속이야.” 하는 말을 들은 베드로는 급기야 저주하며 맹세했다고 합니다. 이럴 수가 있을까요? 너무 심하지 않나요? 앞에서 두 번 부인한 수준으로 이번에도 부인하고 넘어갈 일이지 어쩌자고 저주 맹세를 한단 말인가요?

 

유대인들은 자기 자신이나, 자기의 출생, 또는 운명을 저주할 수 있었습니다. “저주하다”는 뜻의 헬라어 ‘아나테마티제인’은 성서에서 늘 저주받아 파멸될 사람이나 도시에 저주를 내릴 때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베드로의 저주 선언은 그 대상이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합니다.

 

첫째, 이 저주는 예수를 대상으로 합니다. 실제로 베드로가 예수님을 저주했을까요?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가능합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특별한 상황에서 예수를 저주함으로써 형벌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의 이 저주는 이런 초기 기독교의 상황이 반영된 것인지 모릅니다.

 

둘째, 이 저주는 베드로 자신을 대상으로 합니다. 이는 곧 다음과 같은 뜻이겠지요. 당신들이 말하는 대로 예수와 관련이 있다면 내가 저주를 받아도 좋소. 이를 통해서 베드로의 결백이 강력하게 전달되었을 것입니다. 첫째 해석이든지 둘째 해석이든지 예수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베드로의 주장은 최종적인 승인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는 맹세를 누가 믿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베드로는 마지노(Maginot) 선(線)을 넘은 것입니다. 인간이 이렇게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 앞에서 가슴이 저며 오는군요. 배교에 가까운 행동에 대한 부끄러움 탓인지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 당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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