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인문학을 하나님께

미켈란 젤로의 조각상 : 론다니니의 피에타 / '우리의 아픔을 이해하시는 주님'

새벽지기1 2022. 11. 30. 06:33

인문학의 주인은 하나님!

‘인문학을 하나님께’ 오늘은 미켈란젤로의 조각 「론다니니의 피에타」를 하나님께 드리며

‘우리의 아픔을 이해하시는 주님’ 이라는 주제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미켈란젤로의 시작과 끝은 「피에타」였습니다.

24세에 처음으로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것도 「피에타」이고, 미완성으로 유작이 된 작품도 「피에타」였습니다. 
‘피에타’는 이탈리아어로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으로

성모 마리아가 죽은 예수님을 안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그림이나 조각상을 말합니다.
미켈란젤로가 젊은 시절 미학적 이상에 따라 만들었던 바티칸 성당의「피에타」 조각품은 조형적으로 완벽한 걸작입니다. 아들을 무릎에 안고 있는 어머니의 얼굴은 슬픔에 차 있지만, 그 슬픔은 매우 절제되어 차라리 우아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초월한 숭고한 고요가 서려 있습니다.
그러나 「론다니니의 피에타」는 다릅니다.

예수님과 마리아는 이상적인 아름다움이 아닌, 슬픔을 겪고 있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죽은 자식을 보내야 하는 어미의 아픔과, 그 어머니를 애처롭게 바라보는 자식의 아픔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 작품은 미켈란젤로가 죽기 3일 전까지 다듬었던 작품입니다.
그가 젊은 시절 조각했던 것들과는 달리 돈을 벌거나, 출세하거나, 인정을 받겠다는 욕망이 사라지고, 마지막 순간에 깨달은 삶의 본질이 담겨져 있습니다.
「론다니니의 피에타」라고 부르는 것은 1744년 론다니니 가문에서 이 작품을 구매했기 때문이고, 지금은 밀라노 시의 스포르체스코 성에 있습니다. 
이 작품은 아무 무늬도 들어있지 않은 하얀 대리석으로 된 미완성 작품입니다. 투박해 보입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미적 기준에서 본다면 작품성을 인정받기 힘든 것으로, 르네상스 예술의 격률인 ‘자연의 모방과 형식의 이상화’가 없습니다. 불안정해 보이고 조잡해 보입니다.
그러나 더 감동적입니다.

비례를 무시하고 성별을 알 수 없는 얼굴과 신체, 수많은 수정의 흔적,떨어진 예수님의 오른팔, 예수님의 시신은 두 다리가 풀린 채로 놓여 있으며, 마리아는 뒤에서 끌어안으며 부축하고 있습니다.

사실 마리아의 손은 예수님의 어깨에 살짝 걸쳐진 정도이고, 예수님이 슬픔에 잠긴 어머니를 업고 있는 듯합니다.
힘없는 어머니는 아들을 안아 일으키려 하고, 아들은 어머니의 슬픔의 무게를 오히려 짊어지고 있습니다.

산 자가 죽은 자를 부축하고, 죽은 자가 산자를 업고 있는 듯한 그 형태 속에서, 십자가의 신비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너의 아픔을 안다!”고 말씀하시는 듯한 예수님을 볼 수 있습니다.

 

“너의 아픔을 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아픔을 아십니다.
사생아처럼 취급 당하는 아픔, 빈민가의 고단한 삶, 타향살이, 육신의 고난, 배신의 아픔, 사랑하는 부모님을 남겨두고 자식이 먼저 세상을 떠나야 하는 아픔 등, 우리의 아픔들을 몸으로 체험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보면 우리를 향해 수없이 “불쌍히 여기사”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의 약함을 아시는 주님!
그리하여 말할 수 없는 아픔이 온 마음과 육신을 휘감을 때,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늘의 위로를 바라보며 주님 앞에 고개 숙여 기도하고 기도할 뿐입니다.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요1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