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카이퍼

제 24장 하나님을 아는 지식

새벽지기1 2021. 8. 27. 07:05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이것은 인생에 있어 가장 깊은 의미와 고귀한 목적을 나타내주는 구절이다. 실로 이것은 어느 한 예언자가 인간들에게 한 말이 아니고 예수께서 하나님께 하신 말씀인 것이다. 그러나 반면에 이 구절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찾는 자들을 위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 30년 이상 이 세상에 계시던 동안, 즉 나사랫 동네에 있는 아버지 요셉의 집, 산이나 광야에서 아침 또는 해가 지는 황혼 그리고 밤이나 낮에 기도하신 기도들 가운데서, 몇 회의 영혼의 절규들 그리고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고통스러운 간절한 기도 외에는 우리에게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하지만 요한복음 17 장에 나오는 우리의 대제사장 되시는 주님의 기도는 우리의 심금을 울려 준다. 그리고 우리 순례길을 가는데 있어서 성경을 늘 지녀야 할 책으로 주신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신자들은 주님께서 이 땅에서 하냐님께 드리셨던 기도에 공감을 느끼게 된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서 하신 모든 기도들이 기록된 책이 있다면 그것은 결코 파손되어서는 안될 보물이 될 것이다. 첫째, 주님께서 영적 생활이 막 시작될 무렵인 열두 살 때에 드리신 기도는 비록 제한적이긴 하지만 아주 경건하여 이미 신앙의 완성 단계를 보여 주고 있다. 둘째, 열두 살 때부터 서른 살까지의 기도 생활인데, 이때 주님께서는 드러나지 않게 집에서 지내면서 위대한 인류의 대 구속 사업을 준비하고 계셨던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주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전적으로 사역하신 3년의 공생애 기간이다. 이 기간은 아주 짧고 빨리 지나가 버렸으나 천 날 이상 되는 나날 동안에 일어나는 폭풍우 같은 강렬한 영적 투쟁으로 인해서 주님께서는 다른 어떤 때보다 가장 많은 기도를 드리셨다. 안식일에서 다음 안식일에 이르는 매 주마다 주님께서 밤잠을 주무시지 않고 필사적으로 기도하신 시간들을 과연 누가 헤아릴 수 있겠는가.

 

 주님께서 이 땅에서 하신 기도가 그렇게 많은데도 불구하고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하나님의 뜻이니이다’’라는 기도 외에는 실제로 하나도 우리에게 전해 오거나 기록되어 있지 않다. 내용이 손상되거나 요약되지 않은 채로 우리에게 전해 온, 바로 위에 언급된 기도 가운데서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란 표현은 사실상 요한복음 본문의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는 구절과 일치되는 것이다. 그리고 마태복음 11:25 에 나오는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이란 구절은 요한복음 17장의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과 똑같은 것이다.

 

두 경우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언급하셨다. 이 모든 것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인 것이다. 기도의 행위는 무엇이 거룩한가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거룩함 (holiness)을 받아들임으로 말미암아 우리 생명 안에 거룩함이 들어오게 하는 행위이다. 즉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영원히 살기 위해서 뿐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 그 자체로서 영원한 다른 한 생명을 부여받기 위해서인 것이다. 우리 속에 무엇인가가 활동할 때와 그 내적 활동으로 인해 무엇인가가 생성될 때에 우리에게는 생명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임신한 사람이 배 안에서 느껴지는 태동으로 인해 자기의 태속에 한 생명이 있다는 것을 알며, 이것으로 말미암아 곧 한 생명이 태어나리라 기대하는 것과 같다.

 

우리의 인격 자아, 우리 속에 있는 영혼의 존재 역시 마찬가지이다. 만일 여러분 속의 모든 것이 조용하며 활동하는 소리를 전혀 들을 수 없으며 여러분의 가장 깊은 곳에서 활동하는 기미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영혼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여러분은 마치 바다에 파도가 일어날 때에 어느 한 방울도 가만히 있지 않고 한데 어울려 계속적으로 요동하는 것과 같이 세상 풍조에 따라 밀려가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여러분에게 생명이나 내적 활동 그리고 여러분에게 솟아나는 생명의 약동함을 주지는 않는다.

 

이렇게 세상 풍조에 휩싸여 밀려가는 동안에 여러분은 안도감을 느끼며 지적으로 또는 정서적으로는 윤택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반면 여러분은 자신의 개인적인 영적 문제에 대해 등한시하게 되며 따라서 여러분은 영생을 소유할 수 없게 된다. 그러다가 마침내 죽음이 찾아와서 여러분을 이 세상적 삶의 물결에서 격리시켜 놓을 때에, 여러분이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지냈던 육신의 생명은 끝장나 버린다. 그리고 그때에 여러분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게 된다.

 

개별적이고 인격적인 생명은 하나님께서 여러분 속에 뿌려 놓으신 씨에서 움튼 싹인 것이다. 그리고 이 싹이 잘 자라게 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알맞은 양분을 공급해 주며 돌보아 주어야 한다. 이 싹의 체질에 맞지 않는 영양분은 아무리 많이 섭취한다 할지라도 성장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체질에 맞지 않는 양분은 소화, 흡수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먹어 보았자 속이 거복할 뿐인 것이다.

 

이따금 그리고 어느 정도 필요한 양분을 공급받는 것 역시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한다. 싹이 완전히 자라려면 적당한 양분을 정규적으로 그리고 계속해서 섭취해야만 한다. 식물이 완전히 성장해서 결실하게 될 때까지 말이다. 이것이 영혼에 대한 “영생"인 것이다 영생이란 내세에 누릴 생명일 뿐만 아니라 사람의 내적 존재가 그것의 기질, 본질, 그리고 운명에 부합되게 끔 성숙하는 것이다. 이 성숙을 방해하는 모든 저해 요소를 극복하고 충분한 양분을 공급받으며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적인 양육, 발육 촉진, 정화 작업이 아주 변함없고 영구적이므로 완전한 결실이 맺혀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영생이다. 인간의 내적 존재 즉 영혼에 대한 영생은 하나님의 형상을 좇아 창조되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또 여러분은 영원한 생명이 자라는 것은 오직 영원하신 하나님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것을 지키시나이다"(시 16:5).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시 73:25)

 

하나님이야말로 최고로 좋으신 분이신 것이다!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시 36:9). 의심의 여지가 없이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는 것이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간다. 결국 목적은 하나님 자신께서 모든 것이 되시며 만유 안에 계시게 되는 것이다.

 

우리 하나님께서 만주의 주시며, 왕 중 왕이시며, 그분께서 모든 일을 정하시고 허락하시며 통치하신다는 고백은 영광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더 나아가 훨씬 더 깊은 체험은 여러분 속에 거하시며 여러분을 자신의 성전으로 택하시고 여러분 속에서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시되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마음속에 모셔 들이는 일이다. 오직 이렇게 함으로써 여러분은 마음의 안식을 누리게 된다. 은혜를 받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지 열과 빛을 받아 밝고 아름답게 비치는 것이다. 그것 자체로 열과 광채를 내는, 타오르는 난로는 하나님 자신 속에 있는 것이다.

 


영원한 생수의 모든 물방울은 우리를 상쾌하게 해준다. 그런데 이 생수가 솟아나는 샘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영이다.  따라서 성경 전체를 통해, 교회사를 통해 그리고 모든 성도들의 영혼에서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는 힘찬 고백의 찬송이 늘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우리가 눈으로 하나님을 찾으며 마음으로 그분을 보기 원하며, 우리 안에 있는 영혼이 하나님 안에서 최고의 가치를 발견할 때에만 우리 속에 있는 싹이 시들지 않고 잘 자라나, 피어나는 봉우리에서 영생의 꽃이 만발하게 되는 것이다. 영혼의 본성 때문에 다른 방법으로는 영생이 결실할 수가 없다.

영혼은 여러분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이 세상이 자체 의 영혼의 본질을 창안한 것도 아니다. 더욱이 영혼이 저절로 존재하게 된 것도 아니다. 인간 영혼의 본질을 만드신 분은 오직 여호와 한 분이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영혼은 유다나 요한 또는 다른 어떤 사람의 영혼과는 상관없이 개별적으로 하나님께서  정하신 본질에 따라 형성되는 것이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될 것이다. 영혼은 경건하게 성장해 나갈 수도 있고 또한 죄로 인해 시들거나 썩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영광스럽게 자라가든지 해를 받아 부패하든지간에 즉 이러한 성장과 부패는 둘 다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심으신 영혼의 본질에 따른 결과인 것이다.

모든 창조 계획 즉 하늘의 별, 옥수수 열매, 나뭇가지 위에서 노래하는 종달새, 지성소에서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찬미하는 천사들에 대한 계획은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인간 영혼은 본질상 다르게 창조되었다. 성경은 인간 영혼의 본질에 대해서 여러분은 하나님의 형상을 좇아 창조되었다고 명백하게 단 한 문구로 말하였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아주 함축적인 표현이다. 구태여 설명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모형에 불과한 우리 영혼이 원형 되시는 하나님 외에 다른 것에 ‘‘최고 가치"를 부여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또 더 나아가 우리 영혼이 하나님보다 더 중요시하고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들은 모두 우리 영혼을 상하게 하며 부패하게 하며 해를 입히게 하는 것이다.

지구상에 수많은 민족들이 이 사실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을 볼 때 고통스럽다. 더 괴로운 것은 진지하게 진리를 추구하는 자들 가운데 하나님 외의 다른 것에 도달해 버리는 자들이 너무나 많은 것을 보는 일이다. 그런데 가장 마음 아픈 일은 크리스챤이라 자처하는 사람들 가운데 다수가 다른 것을 좇다가 거기에 말려 들어가 결코 하나님 자신을 향유하지 못하고 마는 사실인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절망하지 않으신다.
 예수께서는 지금 이 시간도 하늘 아버지 우편에서 이 땅에 있는 택한 성도들을 위해서 계속해서 기도하고 계신다. "아버지여,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그런 때에 이따금씩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 속에 있는 영혼이 그 사실을 깨닫고 주님의 기도에 대해 “아멘. 아멘!"하며 응답하는 것이다. 

출처 자기부인 / 글쓴이 /바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