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스테반황

그리스도 안에서의 친구

새벽지기1 2019. 9. 7. 05:21


그리스도 안에서의 친구 (8월 22일)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요한일서 1:3)

요한은 생명의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전하는 궁극적인 목적을 제시하는데 그것은 바로 '사귐'이다. 예수께서도 우리를 구원하시는 목적이 ‘사귐’을 위한 것임을 그분의 기도에서 보여주셨다(참조, 요 17장).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은 그것이 생명이 함께 하는 지식이라면 사귐이라는 목표를 향하도록 되어 있다. '사귐'에 해당하는 헬라어 '코이노니아'는 '연합‘, ’공동 소유', ‘교통’ 등의 뜻도 있고 '나눔'의 의미(롬15:27; 고전9:23; 고후13:13)도 있다.

 

우리는 형제들과의 사귐이 있기 전에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의 사귐이 있어야 한다. 생명이신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더불어 사귀는 것이 모든 사귐의 뿌리이다. 그후, 또는 그러한 사귐의 상태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사귐을 갖는 다른 지체들과 그리스도 안에서 사귐을 갖게 된다.

 

성경은 성도의 교제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성도의 교제라는 말은 아주 추상적일 수 있는데 쉬운 개념으로 표현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친구를 만들라는 뜻이다.


필자는 과거에 세상적인 놀이로 친구를 만들었다. 당구 놀이, 카드 놀이, 합창대, 그리고 직장 친구들 등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만나고 주의 나라를 안 이후부터는 그리스도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나누기 위하여 친구를 만들게 되었다. 사도 요한은 우리의 영원하고 참된 사귐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친구가 되는 것이라고 알려준다. 이것을 성경은 성도의 교제라고 말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렇게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의 친구를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교회 내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그리스도 때문에 친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유 때문에 친구를 만드는 것이다. 성경은 이를 당 짓는 것이라 표현한다. 교회 내에서 바벨탑 사랑을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때문이 아니라 다른 목표를 가지고 교회 생활을 하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영광을 구하기 위하여, 계산된 이기심을 채우기 위하여, 또는 교회 내부의 권력을 잡기 위하여 서로 친구인척 한다.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러한 사귐이 교회 공동체에 존재하는 것을 매우 싫어하신다. 오직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때문에 하나님 나라의 복음과 그 나라의 확장을 위한 같은 목표를 가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친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성도의 참된 교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