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주인은 하나님!
‘인문학을 하나님께’ 오늘은 T.S. 엘리어트의 시 「황무지」를 하나님께 드리며
‘황무지 인생에서 축제의 인생으로’라는 주제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엘리어트의 시 「황무지」에는 그 유명한 싯구가 나옵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꽃을 피우며,
추억과 욕망을 섞으며,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눈부셔했던 봄날도,
그에게는 몸서리치며 다시 살아내야 하는 잔인한 시간일 뿐이었습니다.
왜 이렇게 다시 살아나야 한단 말인가.
시인이 왜 그리 잔인한 달이라고 말하는지,
이 시집의 프롤로그를 보면 어렴풋이 느낄 수 있습니다.
「황무지」의 프롤로그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쿠마에서 한 무녀(巫女)가 조롱에 매달려 있는 것을 난 보았다.
아이들이 “무녀야, 너의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묻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죽고 싶어...”
쿠마의 무녀(巫女)는 명쾌한 예언으로 유명했습니다.
이런 그녀를 총애한 아폴로는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그녀는 한 줌의 모래를 들고 와서, 이 모래의 숫자만큼 생일을 갖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쿠마의 무녀는 손에 든 모래만큼의 장수를 허용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햇수만큼 생의 기쁨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늙고 메마르고 쪼글아 들어서 새 장에 갇힌 채, 아이들의 조롱거리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 무녀의 소원은 차라리 죽는 것이었습니다.
죽음보다 못한 잔인한 인생, 황무지 인생!
솔로몬보다 더 큰 영화를 누린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9세기 사라센 제국의 압둘 라만 3세입니다.
그는 당시 가장 큰 왕국을 49년간 통치하였습니다.
그가 다스리던 수도 코르도바는 무슬림세계에서 가장 번성하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그의 수입은 어마어마했습니다. 세계 최강의 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군대로 수많은 국가를 정복하였습니다.
또한 자녀가 무려 616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유명한 것은 그가 누린 부귀영화 때문이 아닙니다.
죽기 전 그가 하였던 삶의 고백 때문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의 영예로운 통치에도 불구하고, 내가 진정으로 행복을 누린 날은 단 14일 뿐이었다.”
14일간의 행복! 최고의 부귀를 누린 사람이 14일간의 행복이라니요?
모든 것을 다 가져본 그였지만, 그 모든 것으로도 채울 수가 없었던 영혼의 목마름이 있었던 것입니다.
인간은 천하보다도 귀하게 만들어졌기에 천하를 다 주어도 만족하지 못합니다.
인간은 영혼의 존재이기에 영혼이 만족되어야 비로소 행복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황무지 인생이 됩니다.
얼마나 오래 사느냐 하는 시간의 양보다도,
존재의 기쁨이 넘치게 얼마나 보람 있게 사느냐 하는 시간의 질이 더 중요합니다.
영혼의 만족은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과 교제하고 동행할 때 채워집니다.
주님과 동행할 때 황무지 같던 인생이, 꽃이 피는 축제의 인생으로 변합니다.
“여호와께 구속 받은 자들이 돌아와 노래하며 시온으로 돌아오니
영원한 기쁨이 그들의 머리 위에 있고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이다.” (사51:11)
구약성경 이사야 51장 11절의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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