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시와 천대와 수모를 당하시다!
(마27:27-31: 조롱 받는 예수)
▶본문
27.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28.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29.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30.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31.희롱을 다 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해석과 설명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27절)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재판 전까지는 대제사장들의 군병들이 예수님을 잡고 있었다.
이제 총독의 선고가 끝나자 총독부의 군병들이 예수를 인계 받아 관정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관정’이란 원래 ‘총독의 저택’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당시 총독부는 이스라엘 서해안 가이사랴에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관정은 일반적으로 안토니아 성이라고 불리던 곳으로, 가이사랴에 상주하던 총독이 명절 때마다 부대를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내려와 이곳에서 치안을 담당했다.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여기서 ‘온 군대’란 예루살렘에 주둔하고 있던 로마군대 병사들을 말한다.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28절)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이제 본격적으로 예수의 수난이 시작되고 있다. 여기서 ‘홍포’는 ‘왕을 상징하는 옷’이다.
그런데 이 홍포가 누구의 것이며, 어떻게 구했는지는 알수 없다.
다만 병사들은 예수를 ‘유대인의 왕’이라고 조롱하기 위해 홍포를 입혔던 것 같다.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29절)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가시관을 엮어 예수님 머리에 씌운 것도 앞에서 ‘홍포’를 입힌 것과 무관치 않다.
즉 예수를 ‘유대인의 왕’으로 조롱하기 위해 왕관을 가시로 만들어 예수께 씌운 것이다.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갈대’는 ‘왕의 홀(규)’를 상징한다.
왕권을 상징하는 황제의 지휘봉(홀)을 갈대로 만들어 예수께 잡게함으로 조롱한 것이다.
에스더가 아하수로왕에게 나갔을 때 아하수에로 왕이 이 홀을 잡하 에스더를 맞이했다.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군병들은 예수를 조롱하기 위해 홍포를 입히고 가시관을 쓴 예수께 마치 왕을 경배하는 모습을 연출하여 무릎을 꿇고 이렇게 조롱했다.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30절)
‘그에게 침 뱉고’
예수께 대한 조롱을 넘어 수치심을 자극하는 행동들이 이어졌다.
왕권을 상징하는 갈대로 만든 홀을 예수께 들게 하더니 이제는 그것을 빼앗아 예수의 머리를 때린 것이다.
이제 예수에 대한 병사들의 모욕은 폭력으로 변했다.
보통 사람들이 견디기 힘든 모욕이며 수치였다.
주님은 그렇게 묵묵히 고난과 모욕을 당하셨다.
◦‘희롱을 다 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31절)
‘희롱을 다 한 후’
로마 병정들에 의해 행해진 모욕이 얼마나 이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꽤 오랜 시간 지속되었을 것이다.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여기서 ‘벗기고’는 예수를 ‘유대인의 왕’으로 조롱하기 위한 소품을 벗겼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예수님의 옷을 입혔다. 이 옷은 바로 군병들이 제비뽑아 가진 옷(시22:18)을 말한다.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마가의 기록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시각은 ‘제3시’ 즉 오전 9시였다.(막15:25)
따라서 이 때는 오전 9시가 되기 이전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예수를 죽이려던 무리들의 궤계가 얼마나 속히 진행되었는지 알 수 있다.
▶교훈과 적용
◦멸시와 천대와 수모!
본문은 빌라도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으신 예수(11-26절)께서 로마 군병들이 손에 넘겨져 엄청난 멸시와 조롱을 받으시는 장면이다.
멸시(蔑視)는 ‘다른 사람을 업신여겨 깔보거나 하찮게 여김’을 일컫는다.
천대(賤待)는 ‘업신여겨 천하게 대우하거나 대하다’ 또는 ‘함부로 다루거나 아무렇게나 취급하다’는 뜻이다.
모욕(侮辱)은 ‘업신여겨 욕되게 함’이란 뜻이다.
멸시와 천대와 모욕!
그 어느 것도 사람들이 견디기 어려운 것이다.
요즘 세상은 이런 일을 당하면 살인 사건까지 일어난다.
그런데 우리 주님이 그런 수모를 묵묵히 당하셨다.
저들은 주님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며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때렸다.
그리고 희롱을 다 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려 나가시는 예수님!
바로 우리 주님이시다.
내가 대학생 때 눈물로 불렀던 찬송이 355장이다.
그 중 3절이 생각난다.
<존귀 영광 모든 권세 주님 홀로 받으소서
멸시 천대 십자가는 제 가지고 가오리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아멘>
지금 내가 다시 부르고 싶은 찬송이다.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여도 내 얼굴을 가리지 아니하였느니라(사50:6)”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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