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자아의 처절한 투쟁 (4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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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로마서 7:15)
복음을 알아갈수록 내 속에 두 자아가 있다는 실제를 체험하게 된다.
두 자아는 처절하게 내 안에서 싸운다. 너무나 반대되는 두 자아는 순식간에 각각 나를 사로잡으려 한다.
특히 주 하나님을 향한 이 두 자아의 마음가짐은 정말로 철저하게 다르다.
믿음으로 새생명의 자아에 있을 때는 한없는 평강과 사랑과 확신과 기쁨을 누린다.
그러나 불신에 빠져 “죄” 또는 “육신”이라고 하는 옛사람이 나를 사로잡을 때는
내 안에 사탄 또는 뱀의 세력이 있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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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미움을 재촉하는 자아가 있는가 하면 무한하게 용서를 허용하고 주께 맡기는 자아가 있다.
이 두 자아의 투쟁이 얼마나 처절한지 바울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고 절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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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이 탄식은 그의 뼈 속까지 말로 감당할 수 없는 영적 투쟁이 있음을 의미한다.
영적인 세계에서 볼 때 내적인 투쟁과 외적인 투쟁은 별 다를 바가 없다.
아무리 환경과 세상이 요동을 쳐도 나의 내면의 세계에서 영적으로 승리하여 이기고
주의 생명인 새 사람이 나를 다스리고 있으면 전혀 요동함이 없다.
모든 것을 초월하는 하늘의 평강을 그리스도 안에서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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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분명하게 선악이 공존한다.
내 멋대로 행하며 타락하고 싶은 마음이 있고 동시에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마음도 있다.
성경과 기도에 힘쓰는 중에도 어느새 우상에 빠지고 싶은 마음이 있다.
남들이 비참하게 망하는 것을 보며 희열을 느낀다.
반면에 그들이 망하지 않고 잘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도대체 나의 진심이란 어떤 것인가?
우리는 정직하게 자신을 알아갈 수록 심한 영적 투쟁에 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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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셨기에 우리의 마음을 아신다.
따라서 주님은 이 문제를 돕기 위하여 우리에게 옛사람을 죽이라고 하셨다.
어떻게 죽이는가? 죽은 것으로 간주하고 그 옛생명으로 살지 말아야 한다.
그 대신 성령을 의지하여 주의 피로 값주고 사신 새생명으로 살아야 한다.
바로 이 ‘영생’이 우리가 거듭난 이후에 실제 나의 “자아”이다.
과거의 나는 십자가에 이미 죽었으며 현재 이후로의 나는 오직 믿음으로 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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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바울은 내면 세계에서 진행되는 영적 투쟁의 승리 비결을 알려준다.
그 비결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승리이다.
내 자아를 부인하고 그리스도와 연합할 때
부활의 영이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옛자아 및 세상을 넉넉히 이기게 된다.
[출처] 4월 2일 두 자아의 처절한 투쟁|작성자 스데반 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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