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권성수목사

그래도 터와 틀은 있어야

새벽지기1 2017. 11. 24. 07:19

요즘 ‘옥탑방 고양이’라는 드라마로 혼전동거가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호모섹스가 그 대범한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돈 몇푼 때문에 인간의 생명을 빼앗고 이권을 위해서라면 인간의 기본권도 짓밟는 일이 흔해졌다.

지금은 후현대주의 시대라고 한다. 어떻게 정의되든 후현대주의의 특징은 튀는 것이다. 규격과 형식과 표준과 절대를 탈피하고 다양과 다원,해체와 참신을 추구하는 것이다. 사람마다 모양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배경이 다르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사는 세상은 다원화의 특징을 가질 수밖에 없고 다양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해체와 참신이 발전과 진보의 길목일 수 있다.

다양과 다원이 아무리 튈 것을 요구한다 할지라도 인간됨의 기본은 허물어져도 안 되고 깨뜨려져도 안 된다. 인간이 인간이기를 포기하면 인간도 존재할 수 없고 인간사회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원화 시대에 ‘절대’라는 말은 금기처럼 여겨진다. 절대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현대주의 시대에 만물의 절대적인 척도라고 하던 이성도 부패되고 오염된 기준이라는 것이 밝혀진 이상 아무것도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정말 절대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는가? ‘절대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또 하나의 ‘절대’이다. ‘모든 것이 상대적이다’는 것이 바로 ‘절대’이다. 다시 말해서 절대적인 것은 없다는 사람들도 나름대로의 ‘절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절대’를 ‘상대’와 ‘다양’으로 가장하고 있을 뿐이다.

인간의 참된 ‘절대’는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은 다 절대적이다. “성경은 폐하지 못한다”(요 10:35)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야 인간이 인간다워진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시 119:105)이다. 하나님을 배제하고 인간이 만들어낸 절대는 불행과 파멸을 낳는다.

‘튀는 자만 산다’는 후현대주의 시대에 튀어야 하지만 허물어뜨릴 수 없는 터 위에서 튀고 깨뜨릴 수 없는 틀 속에서 튀어야 한다. 인명과 인권과 1남1녀의 결혼은 허물어뜨릴 수 없는 터요 깨뜨릴 수 없는 틀이다. 그 터는 나와 우리가 서 있는 터이고 그 틀은 나와 우리를 버티는 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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