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권성수목사

체념인가,희망인가

새벽지기1 2017. 11. 23. 07:09


며칠 전 모 텔레비전 아침 프로그램에 청소년의 성문제가 대담 형식으로 다루어졌다. 참석자 중에 고등학교 1학년 남학생과 중학교 1학년 여학생은 대부분의 학생들이 성교육에 흥미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음란물에 빠져 있거나 물려 있다고 했다.

사회자는 현실을 그대로 인정하고 학생들을 포용하면서 ‘어른들은 그래도 너희만은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식의 호소를 하자고 했다. 인정과 포용과 호소, 그러나 그 뒤에 체념이 감추어져 있다.

혼전동거를 놓고 찬반 논쟁이 뜨겁다. 교장 선생님을 고발하기 위해 학생에게 학부모 도장을 받아 오라는 교사들이 있다. 비단 성도덕만이 아니라 가정과 교육의 허물어진 터전이 충격으로 다가온다.

세상은 문제의 궁극적인 원인도 모르고 궁극적인 해결도 제시하지 못한다.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고 너와 내가 좋아서 하는데 왜 하지 말아야 하는가? 본능과 본능을 자극하는 환경 속에서 어떻게 빠져 나올 수 있는가?’ 이런 질문 앞에서 세상은 답을 주지 못한다.

예수님은 유리하고 방황하는 ‘목자 없는 양들’을 보시고 민망히 여기셨다. 예수님은 그러나 체념하시거나 절망하시지 않았다. 예수님은 ‘목자 없는 양들’(문제)을 동시에 ‘추수할 곡식’(해결)으로 보셨다. 추수할 일꾼들만 있으면 추수하게 된다고 하셨다 (마 9:36-38). 21세기를 ‘시스템 작동중지’(system failure)로 보면서 동시에 ‘대추수’(great harvest)의 기회로 본 교계 지도자들도 예수님의 마음과 눈을 닮은 것이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로서 양들의 문제를 정확하게 보시고 정확하게 해결해 주신다. 예수님은 해결의 문이 막힌 문제를 보시고 답답해 하시지 않는다. 예수님의 눈으로 보면 문제는 해결의 기회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희망이다. 성문제 가정문제 교육문제는 문제만이 아니라 해결의 기회이다. 예수님의 시각으로 문제를 보고 예수님의 방식으로 문제를 풀 수 있다.

예수님을 모르는 세상이 볼 때는 문제는 포용과 체념의 계기이지만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볼 때 문제는 추수와 희망의 기회이다. 문제에 부딪힐 때 체념이 앞서는가, 희망이 앞서는가? 문제를 보고 체념하지 말고 예수님을 보고 희망을 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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