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컬럼4

개혁신학의 종교개혁

새벽지기1 2017. 11. 12. 07:18


10월은 결실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교회는 이 달에 종교개혁을 떠올린다.

전설에 의하면, 독일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가 1517년 10월 31일'95개 항목'을 슐로스키르쉐 옆문에 붙였다고 한다.

이번 6-7월에 종교개혁자 탐사를 할 때 500주년에 대한 행사를 내년 4월부터 시작한다고 팜프렛이 돌고 있었고

그때를 맞추어 증축하고 단장하는 것을 보았다.

독일! 하지만 개혁신앙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1517년 루터가 시작했다고 하지만 과연 그의 신학이 우리에게 얼마나 영향을 끼쳤나?

그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추구하는 신학과 신앙이 개혁신학과 개혁신앙이라면

개혁신학의 종교개혁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개혁신앙은 주로 칼빈주의를 의미한다.

개혁신학은 칼빈의 신학사상만 아니라

그보다 먼저 스위스에서 종교개혁을 이끌었던 츠빙글리와 마틴 부처를 잊을 수 없다.

칼빈이 직접 영국에 신학사상을 강의한 적이 없지만 마틴 부처에 의해 개혁신앙이 전해지면서

영국 대륙에선 개혁신학이 곧 칼빈주의만 스콜틀랜드에서는 장로교정치가 칼빈주의에서 가져오거나 언약사상을 추구한다.


영국에서는 청교도주의라는 이름하에 칼빈주의를 추구한다.

칼빈은 종교개혁의 개혁신학을 가장 체겨적으로 정리했기에 개혁교회는 그의 신학사상을 개혁신학으로 수용한다.

그 대표적인 실례로『벨지카 신앙고백서』는 1531년 칼빈의 신학사상에 근거하여 만들었고,

1571년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서로 채택했다. 1

563년에 만들어진『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서』역시 칼빈주의를 바탕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개혁신학은 곧 칼빈주의라고 말한다.


그러면, 개혁신학의 종교개혁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칼빈의 종교개혁보다 우리는 츠빙글리와 마틴 부처의 종교개혁을 봐야 한다.

츠빙글리는 루터와는 상관없이 취리히에서 종교개혁을 이끌었고,

부처 역시 그와는 상관없이 스트라스부르에서 종교개혁을 이끌었다.
개혁신학이 루터주의에 영향을 받거나 칼빈주의가 루터주의에 영행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물론 유사한 측면이 없지 않다.


1529년 루터파와 츠빙글리파가 말부르크에 모여 담화를 나룰 때 14개 항목엔 동의했고,

마지막 항 15째 항목에 일치를 보지 못해 결렬했다.

이를 볼 때 종교개혁의 신학은 일치한다고 볼 수 있지만 서로에게 영향을 줘서가 아니라 독립적으로 발전한 것이다.

그렇다면 독일 종교개혁을 기념하는 500주년이 아니라 스위스 종교개혁을 기념하는 해를 지켜서야 한다.

하지만 뚜렷하게 몇 년 몇 월이라고 스위스 종교개혁을 일컫지 않는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정말 1517년 10월 31일에 일어났나? 아니다. 아무도 모른다.

'95개 항목'을 붙였다고만 했지 언제 붙였음을 그는 밝히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구전으로 내려올 뿐이고 추정했을 뿐이다.


우리는 개혁신앙인으로 스위시 종교개혁을 기념해야만 할 것이다.
그렇지 무턱대고 종교개혁이 독일에서 일어났으니 그것을 기념한다고 한다면,

그것의 신학은? 자칫하면 혼합주의에 빠져 우리의 정체성을 찾지 못하도 비난만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