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모 성도님으로부터 ‘요즘 죄를 많이 짓고 산다’는 한탄을 들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죄를 짓지 않아야 하는데 죄를 많이 짓고 회개하며 산다’는
탄식어린 말씀을 들었다.
나는 성도님의 탄식어린 말씀을 듣고 별일 아니라는 투로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님,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에요.”
사실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끝없는 회개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제아무리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산다 해도 우리의 순종은 부족할 수밖에 없고
말씀에 미치지 못할 수밖에 없다.
하여, 그리스도인의 삶은 어쩔 수 없이 끝없는 회개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아니, 회개가 없는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상상할 수 없다.
회개는 그리스도 안에서 의인된 그리스도인의 삶의 필수 요소다.
그리스도인은 마땅히 하나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한다.
하나님 말씀을 따라 사는 것만큼 구원을 사는 것이기에 최선을 다해 말씀을 따라 살기에 힘써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최선을 다 한다 해도, 믿음과 성령이 충만하다 해도 온전히 살아내지는 못한다.
구원은 받았지만 받은 구원을 삶으로 충분히 살아내지는 못한다.
마땅히 살아내야 함에도 불구하고 결코 온전히 살아내지는 못한다.
이것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실존이며, 모든 그리스도인의 고민이자 좌절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은 구원받은 죄인이기 때문이다.
죄의 권세로부터 구원받았으나 여전히 죄인이고,
그리스도 안에서 의인이 되었으나 여전히 걸레와 같이 더러운 존재론적 모순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진실로 그렇다.
그리스도인은 구원받은 죄인이요 걸레 같은 의인이라는 존재론적 모순과 긴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위대한 사도 바울도 이와 같은 존재론적 모순과 긴장을 온 몸으로 겪으며 탄식했다.
“나는 내가 원하는 선한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원하지 않는 악한 일을 합니다.
나는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나
내 지체에는 다른 법이 있어서 내 마음의 법과 맞서 싸우며
내 지체에 있는 죄의 법에 나를 포로로 만드는 것을 봅니다.”(롬7:18,22-23)
옳다. 모든 그리스도인 안에는 이와 같은 존재론적 모순과 실존적 긴장이 있다.
원하든 원치 않든 이와 같은 존재론적 모순과 실존적 긴장을 끌어안고 살아야 한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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