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목회단상

베드로의 믿음의 분수령

새벽지기1 2017. 6. 26. 07:26


베드로의 믿음은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 부인하기 전과 후로 크게 달라진다.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 부인하기 전,

베드로의 믿음은 매우 당당하고 확신에 차 있었다.

천지가 개벽하는 한이 있어도 예수님을 향한 자기의 믿음과 충성은

결코 흔들리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바위처럼 단단했다.

다시 말해 자기 믿음에 대한 굳은 신뢰와 긍지가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 부인함으로써 자기 믿음에 대한 굳은 신뢰와 긍지가 산산조각 났다.

자기 믿음이 얼마나 허약하고 보잘 것 없는 것인지를 뼈저리게 경험했다.

베드로는 이 뼈저린 실패를 경험하고서야 비로소 자기 믿음에 대한 신뢰와 긍지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예수님을 향한 자기 믿음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은혜로우심과 신실하심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예수님은 이미 그런 사실을 내다보셨다.

자기 믿음에 대한 신뢰와 긍지가 차고 넘치는 베드로를 보며

그가 자기 믿음이라는 굳은 껍질에 갇혀 있다는 것,

자기 믿음이라는 굳은 껍질이 깨어져야만 진정으로 하나님의 은혜로우심과 신실하심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내다보셨다.

그래서 “닭이 울기 전에 네가 나를 모른다고 세 번 부인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요13:38).

 

옳다. 참 믿음, 하늘로부터 주어진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로우심과 신실하심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믿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런데 한국의 그리스도인 가운데는

예수님을 부인하기 이전의 베드로와 같은 신앙을 가진 자들이 참 많다.

자기 믿음에 대한 확신과 신뢰와 긍지가 하늘을 찌르는 자들이 적잖이 있다.

이들은 대체로 용감하고 완고하다. 보수적이다.

자기 믿음 이외의 것은 다 부정한다.

옆에서 보면 시쳇말로 꼴통의 전형이다.

그러나 스스로는 이런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그저 자기 믿음에 감사할 뿐이다.

자기 믿음을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라고 감사하며 자기 믿음에 몰입한다.

 

이들은 교회 안에서 믿음이 좋은 자로 인정받는다.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 부인하기 이전의 베드로의 신앙에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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