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목회단상

인간의 근원 절망

새벽지기1 2017. 6. 21. 13:57


일본의 칸트 전문가인 나카지마 요시미치는 인간의 악함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간은 스스로 더욱 완전해지고자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일수록,

타인의 행복을 바라고 타인에게 친절할수록 필연적으로 악으로 빠져든다.

학교나 병원을 건설하고 법률을 정비하고 문화를 발전시킬수록,

즉 사회를 개량하면 할수록 악이 인간의 몸에 달라붙는다.

악은 모든 사람의 ‘선을 행하고자’ 하는 의지 속에 녹아들고,

사회를 ‘선하게’하려는 욕구 속에 녹아든다.

악은 암세포처럼 생명 현상 자체에 들러붙어서 자신을 증식시킨다.

그런데도 우리는 ‘선을 행하고자’ 하는 의지를 완전히 포기하고 어리석은 양 무리로 돌아갈 수도 없다.

그야말로 출구가 없다.

우리 인간은 모두가(아무리 극악무도한 사람이라도, 또 아무리 성자 같은 사람이라도)

‘도덕 학교’의 낙제생이며 아무리 애써도 우등생이 될 수 없다.”

(악이란 무엇인가. 6-7쪽).

 

정확하고 정직한 진단이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악하다.

아무리 선한 사람이라도 내면의 깊은 곳을 들여다보면 여지없이 악하다.

끔찍한 범죄가 발생할 경우 언론을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이 범죄자를 비난하며

범죄자와 자기를 구분하지만 모든 인간은 악에 관한 한 출구가 없다.

우리 모두는 악인이다.

 

철학자 칸트는 악을 행하는 범죄자,

즉 거짓과 기만으로 가득한 비열한 인간, 상습 방화범, 상습 강간범,

교활한 기회주의자, 권력에 안주하는 관료, 악덕 정치가를 악의 전형으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언제나 외형적으로 선한 행위를 하고,

빈틈없이 약자를 돕고,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이고,

약속은 반드시 지키고, 모든 법률을 지키고,

현명하고 온화하게 살아가는 선량한 시민을 악의 전형으로 보았다.

외형적으로 선한 행위를 하면서 내면에는 교묘한 자기사랑의 수로가 나있는 사람이

진정으로 영리한 자요 강인한 자이며,

그런 영리함과 강인함이야말로 진정한 악의 얼굴이라고 보았다.

악의 얼굴을 한 악보다 선의 얼굴을 한 악,

합법적인 행위 속에 숨겨져 있는 악을 훨씬 더 위험한 악이라고 보았다.

 

바울은 자기 안에서 이런 인간의 악을 보았다.

그래서 탄식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4)

 

실로 근원적인 절망의 탄식이다.

악의 실체를 또렷이 본 자만이 내뱉을 수 있는 장탄식이다.

진실로 인간은 악에 관한 한 출구가 없다.

이것이 인간의 근원 절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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