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목회단상

기독교 윤리는 가능한가?

새벽지기1 2017. 6. 23. 07:00


기독교 윤리는 가능할까?

기독교계에는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을 추구하는 NGO 단체가 활동하고 있고,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잘못된 행태나 덕스럽지 않은 행위가 도드라질 때

기독교 윤리를 들먹이며 비판하는 자들이 있는데 정말 기독교 윤리라는 게 있을까?

 

프랑스의 법철학자이자 방대한 신학 저술가인 자크 엘륄은

한 마디로 기독교 윤리란 존재할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기독교 윤리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기독교 윤리라고 할 만한 체계를 세우는 일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정확한 통찰이다.

 

기독교 윤리란 하나님의 계시, 하나님의 뜻을 윤리적 범주로 규범화하고 체계화하는 것인데

하나님의 뜻을 규범화하고 체계화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계시, 하나님의 뜻은 불변의 진리나 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계시나 뜻이 형이상학적 진리나 영원불변하는 원리라면 체계화가 가능하겠지만

하나님의 계시나 뜻은 윤리의 차원 너머에 있을 뿐만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자유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아니 하나님 자신이요 하나님의 주권적 행위이기 때문에

사람이 규범화하거나 체계화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또 그리스도인의 삶은 성령을 통해서만 살 수 있다.

성령을 통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지

외형적 행위가 기독교적이라 해서 그리스도인의 삶인 것은 아니다.

사실 기독교적인 행위와 그리스도인의 삶은 뿌리가 다르다.

기독교적인 행위는 문화와 종교의 범주에 속한 것이고,

그리스도인의 삶은 성령이 역사하는 범주에 속한 것이다.

그리고 성령은 바람이 임의로 부는 것처럼 원하는 대로 역사한다.

성령은 무언가에 묶이지도 않고, 우리 손에 잡히지도 않는다.

성령은 하나님의 자유만큼이나 자유롭게 역사한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의 삶은 이러해야 한다고 윤리적인 규정을 해버리면 어떻게 되겠는가?

성령의 행하심과 부추기심과 인도하심 없이도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지 않겠는가?

 

예수님께서 바리새주의자와 싸우고, 바울이 율법주의자와 싸운 것도 그 때문이다.

저들이 기독교 윤리를 유독 강조하고 치열하게 추구했기 때문에,

저들로 인해 하나님나라의 복음이 왜곡되고 추락하기 때문에 양보 없이 싸운 것이다.

그런데 교회는 처음부터 그리스도인의 삶과 관련해 윤리적인 작업을 해왔다.

 

바울의 말을 들어보자.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서 세상의 유치한 원리에서 떠났는데

어찌하여 아직도 이 세상에 속하여 사는 것과 같이 규정에 얽매여 있습니까?

붙잡지도 말아라, 맛보지도 말아라, 건드리지도 말아라, 하니 웬 말입니까?

이런 것들은 다 한 때 쓰다가 없어지는 것으로서 사람의 규정과 교훈을 따른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꾸며낸 경건과 겸손과 금욕하는 데는 지혜를 나타내 보이지만

육체의 욕망을 억제하는 데는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골2:20-23)

 

여기서 말하는 붙잡지도 말아라, 맛보지도 말아라,

건드리지도 말아라, 는 규정들이 다 윤리화 작업이다.

물론 그리스도인에게는 윤리가 필요하다.

그러나 기독교 윤리가 아무리 선하다 해도 하나님나라의 복음에는 미치지 못한다.

아니,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왜곡하고 파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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