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김남준목사

성도가 누릴 기쁨 (빌2:17~18)

새벽지기1 2017. 6. 2. 07:21


I. 들어가면서


요즘 건강해지기 위해서 사람들이 얼마나 운동에 열심인지 모르겠습니다. 최근 들어 사람들은 건강과 웰빙(well-being)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간혹 사람들이 운동을 열심히 하다가 운동 중독증에 걸리기도 합니다. 얼마전 개그맨 김형곤씨가 무리한 운동하다가 그만 돌연사했습니다. 건강하게 잘 살려고 운동하다가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 잘 사는 것입니까? 건강에 너무 집착하면 도리어 그것 때문에 건강을 해치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건강에 너무 집착하지도 말고, 너무 소홀히 하지도 말고 중용을 지키십시오. “하나님 손을 의지하는 자에게 나쁜 일이 뭐가 있겠어요?” 건강에는 웃음이 참으로 좋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웃음의 질입니다. 땀을 흘리는 것이 좋다는 것은 상식인데, 전문가들에 의하면, 운동하면서 흘리는 땀과 사우나에서 흘리는 땀은 성분이 틀리다고 합니다. 사우나에서는 흘리는 땀에는 수분만 있고 노폐물은 그대로 체내에 축적됩니다. 반면 노동을 하다가 흘리는 땀에는 수분뿐 아니라 중금속등 노폐물이 같이 분비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웃음에도 품격이 있습니다. 즉, 격조 높은 웃음과 싸구려 웃음이 있습니다. 한참 웃다 보면 마음이 공허해 지는 웃음이 아니라, 한참 웃었는데 여운이 남아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웃음이 진짜 웃음입니다. 한사람이 얼마나 품격 있는 지가 웃음 속에 베어 나오는 것이지요. 우리 영혼의 맑은 샘에서 청아하게 울려 퍼지는 참된 기쁨은 어디로서 임하는 것입니까? 다름 아닌, 우리의 영혼의 원천이신 하나님께로서 임하는 기쁨입니다.

 

그래서 사도가 감옥 속에서 감옥 바깥에 있는 성도들에게 “나와 함께 기뻐하라, 나의 기쁨에 동참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는 말씀에서 “관제”는 액체로 드리는 제사를 말합니다. 이는 전제라고도 불리는데, 제물 위에 기름이나 포도주를 붓는 제사입니다. 제 생각에는, 그 포도주는 알콜 도수가 매우 높았으리라 사료됩니다. 그래서 제물에서 흘러나온 기름 위에 알콜을 부으면 불이 타올라 번제로 드려집니다. 사도는 자신을 마치 그 관제처럼 하나님께 드리고 싶었습니다. 빌립보교회는 하나님께 대한 탁월한 사랑, 탁월한 헌신, 탁월한 목양의 관계를 가진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바울에게 빌립보교회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정도로 사랑스런 교회였습니다. 빌립보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 자기를 다 바치고도 모자란 듯이 헌신된 삶을 살았기 때문에, 바울은 빌립보서 1장에서 내가 너희를 위해서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바울도 자기 자신을 제물처럼 하나님께 다 드린 고난이 넘친 생애를 살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나의 죽음과 너희의 헌신이 번제와 같이 타올라 어우러져 하나님 앞에 타오른다면 얼마나 기쁠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나와 함께 기뻐하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런 종류의 기쁨은 결코 싸구려 감상주의적 기쁨이 아니라 영혼을 뒤흔드는 천상의 신령한 기쁨입니다.

 

II. 기쁨의 근원: 하나님 중심에서 오는 기쁨


우리는 기쁨의 원천을 나 중심(Self-centered)에 두는 경향이 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대로 환경이나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낙담하고 슬퍼합니다. 혹시 기쁜 일이 생길라치면 도리어 그것을 기뻐하느라 하나님을 잊기 십상입니다. 여러분도 그런 경험이 있지 않습니까? 힘들 때는 하나님만 의지하다가 오히려 평안한 때는 하나님을 잊어버립니다. 그러므로 기쁨의 근원을 하나님께 두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기쁨의 근원이 하나님 중심(God-centered)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중심의 기쁨을 구하면 많은 일 속에서 하나님이 보이지만, 자기중심의 기쁨을 구하면 많은 일 속에서 하나님이 안보입니다. 나는 고난을 당하여도 하나님의 일은 번영하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사도 바울은 순교의 시간을 기다리는 사형수였습니다. 그런데도 옥 바깥에 있는 성도들에게 기뻐하라고 말하였습니다. 자신의 처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과 일하심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기뻐하고 기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열어 한번 생각을 바꿔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나는 비록 어려워도 지체들을 복주시고 나는 부족하여도 하나님이 교회를 위해 나를 쓰시는구나. 나는 아웃리치 못가더라도, 지체들을 들어 선교에 쓰시는 구나.” 그렇게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어 가는 것을 보면 얼마나 기쁩니까?

 

III. 하나님의 시야로 바라보는 기쁨


눈을 들어 하나님의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에는 마음 아픈 것도 많지만 그것과는 비교될 수 없이 놀라운 기쁨이 넘쳐납니다. 참된 기쁨은 경박함 속에서 솟구치는 것이 아니라 진지함 속에 솟아납니다. 주님의 영광, 주님의 은혜, 주님의 사랑을 마음깊이 묵상해 보십시오. 과거의 우리를 회상해 보면, 비록 어리고 연약했지만 하나님을 향해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기에 기쁨이 충만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여러분의 관점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함께하게 하신 공동체 안에서 우리를 어떻게 사용하시기를 원하십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는 일치를 위해 마음을 드려 머리되신 주님과 지체들을 섬기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 안에서 참 기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러도 무효가 되지 않는 기쁨, 고난이 와도 삼킬 수 없는 기쁨, 이 세상 그 무엇이 와도 사라지지 않는 기쁨,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기쁨과 환희가 하나님의 시야로 주님과 교회를 섬기는 사람에게 충만합니다. 제가 옛날에 전도사 하던 시절, 담임 목사님은 교인들이 적게 나온 날은 “밥알이 모레 알 같군요”하면서 걱정하시고, 교인들이 많이 나온 날은 “오늘은 안 먹어도 배부르군요.”하면서 기뻐하셨습니다.

 

내 생에 가장 귀한 것 섬기는 삶
내 생에 가장 귀한 것 섬기는 삶
주님을 섬기길 간절히 원하네!
내 생에 가장 귀한 것 섬기는 삶

 

기쁨을 근원을 주님께 둔 삶, 주님과 동행하면서 사는 삶은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누리는 기쁨을 누가 뺏을 수 있으리요! 우리가 만일 기쁨의 근원이 되시는 주님을 모시고 산다면 우리가 안 가진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만약 주님을 가지지 않고 모든 것을 가진들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사 우리를 예수의 피로 구원하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섬기며 즐거워하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눈을 들어 하나님의 시야를 가지고 주변을 바라보면 얼마나 기쁨이 넘칩니까? 지체들의 회심, 선교지의 열매들… 우리 자신을 관제와 같이 부어 드리면 이 얼마나 기쁩니까!

 

IV. 결론과 적용


훗날에 우리가 주님 나라에 가서 그분 앞에 서면 무엇이 남겠습니까? 일평생 한 교회를 몸 바쳐 섬긴 것과, 주님을 믿고 세상에 나가 열심히 일한 것 외에 뭐가 있습니까? 이 세상에 살면서 한 교회를 섬겨서 우리처럼 방황하던 영혼들이 주님을 만나 변화될 수 있도록 돕는 일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닙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인생의 본질적인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이 본질적인 기쁨을 우리의 소명이라 생각하고 사십시오. 바울이 권면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사용하셔서 당신의 계획을 이루어 가심을 보면서 기뻐하는 것입니다. 언젠가 우리 모두 죽어서 하늘나라에 가서 그분 앞에 설 날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불평불만이 있거들랑 눈을 들어 하나님의 눈으로 주변을 바라보며 감사하고 사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변화시킨 것, 때마다 시마다 말씀해 주시는 것, 지체들과 함께 할 공동체를 주신 것, 이 모두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것이니 기쁨의 이유들이고 감사의 제목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