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학단상

십일조 헌금(1)

새벽지기1 2017. 4. 1. 07:23


십일조 헌금(1)

십일조 헌금이 신학적으로 별로 타당성이 없다는 사실은 내가 말할 필요도 없으니까 접자. 십일조가 주로 미국의 근본주의 전통에 있는 신자들에게서 나왔고, 한국교회는 그 교회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 전통을 세웠는데, 이제는 근본주의, 복음주의, 에큐메니칼, 자유주의 할 것 없이 모든 교회들이 십일조 헌금을 교회 다니는 기준으로 삼는 것 같다.


십일조 헌금은 신학적인 차원이 아니라 교회 운영에 속한다. 십일조 헌금이 없다면 도대체 교회는 어떻게 꾸리는가, 목사생활은 어찌 하는가, 하는 질문이 가능하다. 그건 다른 방식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다. 최소한 대화가 가능한 신자라고 한다면 교회 공동체를 꾸려가기 위한 최소한의 재정적 의무를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크게 부담이 되지 않는 한도 안에서 자발적으로 감당하는 헌금이나 분담금으로, 무슨 모임이든지 회비를 거두듯이 그런 방식으로 얼마든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십일조 때문에 신앙생활에 방해를 받는 사람들이 많다. 반대로 십일조 때문에 교회에서 힘을 주는 사람들도 많다. 십일조 헌금을 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하나의 공동체에서 자유롭게 활동하기는 힘들다. 십일조 헌금을 드리지 않는 사람은 교회 장로가 될 수 없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제도적으로 십일조 헌금을 없애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십일조 헌금이 없으면 교회 헌금의 총량이 절대적으로 줄어들지 모른다는 염려를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건 그것대로 해결해야 할 것이다. 교회 운영에 들어가는 비용을 최소화하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현재 한국교회는 과소비다. 일단 인건비가 과다 지출된다. 건물 유지를 위한 비용도 지나치다. 교회 행사 비용도 만만치 않다. 그걸 최소화한다면 십일조 제도를 없애기 때문에 벌어진 헌금 총량의 축소는 그렇게 결정적인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십일조 헌금을 포기하지 않으면 그것은 결국 한국교회를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만드는 걸림돌이 될 것이다. 물론 당장 그런 걸 시도하면 현재 교회 구조 상 너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테니까 천천히 그런 쪽으로 나가는, 연착륙할 필요는 있다.


이를 위해서는 개교회 중심이 아니라 노회나 총회 차원에서 목사들의 생활비를 균등하게 해결해주는 제도의 도입이 우선되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현재의 교회에서 십일조 제도를 포기한다는 말은 씨가 먹히지 않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 충격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당장 십일조 제도를 포기하더라도 교회 운영에 큰 문제가 없는 교회에서 용기를 갖고 시작하면 그게 불씨가 되어 새로운 변화를 몰고 올 수도 있을 것이다.


위의 글이 어떤 분들에게는 해괴하게 들릴지 모르겠다. 당장 교회의 존립이 위태롭게 된다는 염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교회를 허물려는 게 아니라 세우려는 마음으로 던진 말이다. 우리의 십일조와 종교개혁 당시 가톨릭의 면죄부는 어떤 점에서 비슷한 점이 많다. 오늘 한국교회에 십일조가 얼마나 심각하게 율법적으로, 기복적으로, 주술적으로 행사되고 있는지 알 만한 사람들은 모두 알 것이다. 십일조가 아무리 교회의 물적인 토대를 지탱하는 효과가 있다 하더라도 신학적으로 정당하지 못하면 결국 우리의 신앙을 허물고, 더 나아가서 교회 자체를 허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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