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권혁승교수

신앙의 '아름다움'(6): 균형의 '아름다움'

새벽지기1 2017. 2. 19. 08:12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빌 1:23-24) 

 

'아름다움'의 핵심은 균형이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균형을 잃으면 '아름다움' 자체가 무너진다. 체조경기는 균형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운동이다. 그 가운데 여자만이 참가하는 평균대 경기는 10cm 넓이의 막대 위에서 펼치는 묘기 운동이다. 좁은 막대 위에서 걷기, 뛰기, 돌기와 같은 움직임 동작과 평형자세와 같은 정지된 동작으로 구성되는 평균대 체조경기는 신체의 평형성, 조정력, 유연성, 민첩성 등을 강조한다.

 

신앙의 '아름다움'도 균형이 필요하다. 바른 영성은 균형에서 비롯된다.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영도자가 된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당부도 균형 있는 신앙을 가지라는 요청이다. 신앙의 균형을 유지하려면, 마음이 강하고 담대해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실천이 있어야 한다(수 1:7).

 

균형 있는 신앙의 대표적 인물은 바울이다. 그가 보여준 신앙의 균형은 다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로, 학문(지성)과 영적 경험(영성)의 균형이다.

 

학문의 중심지 다소에서 태어나서 성장한 바울은 헬라 철학에 능통하였다. 그뿐 아니라 당대 최고 랍비였던 가말리엘의 문하생이 된 바울은 유대종교에 뛰어난 학식을 지니게 되었다.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히 있는 자라”(행 22:3) 신약시대 유대인들의 전문교육은 랍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힐렐의 손자이면서 산헤드린 의장까지 지낸 바 있는 가말리엘은 바리새인 교법사로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행 5:34)였다. 당시 최고 의결기관인 산헤드린은 이스라엘 내에서 뿐 아니라 해외의 디아스포라 유대인에게도 막강한 영향력을 끼쳤다. 바울은 당대 최고 명문대학에서 엘리트 과정을 거친 최고의 지성인이었다.

 

바울의 지성은 다메섹으로 가는 길목에서 그리스도 예수를 만난 영성으로 균형을 이루었다. 다메섹 경험은 바울의 삶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은 충격적 사건이었으며, 평생 그를 이끌어가는 영성의 근본 바탕이 되었다. 바울은 다메섹에서의 회심을 사도행전에서 무려 세 번이나 거듭 언급하고 있다(9장; 22장; 26장). 바울의 위대함은 지성과 영성의 균형에서 찾을 수 있다.

 

둘째로, 그리스도와 함께 있고 싶은 거룩한 욕망과 교회의 유익을 위한 실제 사역의 균형이다.

 

바울은 개인적으로 이 땅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고 싶은 욕망이 더 크다고 하였다. ‘그렇게 하고 싶으나’(이전 번역은 ‘욕망이 있으나’)로 번역된 헬라어 ‘에피투미아’는 ‘욕심’ 혹은 ‘탐심’을 뜻하는 부정적 의미의 단어이다.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갈 5:24)에서 ‘욕심’도 같은 ‘에피투미아’이다. 그만큼 그리스도와 함께 있고자 하는 마음이 컸음을 의미한다. 우리의 궁극적 목적지는 이 땅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나라이다. 이 땅은 그곳에서의 영원한 삶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주께서 부르실 때에 아무런 미련 없이 이곳을 떠나 그동안 갈망하였던 그곳으로 가는 것이 행복이다. 그런 기대와 소망이 없다면 우리의 신앙은 균형감을 잃은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와 함께 있고 싶은 욕망이 더 큼에도 불구하고 지금 여기에 있어야 할 이유가 분명했다. 그것은 이 땅에 머무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기‘ 때문이다. 바울의 존재 이유와 목적은 ’교회의 유익‘이었다.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있고 싶은 더 큰 개인적 욕망도 스스로 포기하였다. 바울의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미래 소망과 교회를 위한 실제 사역 사이의 균형은 마지막까지 선한 싸움을 싸워 승리하게 한 비결이었다.

 

지성과 영성의 아름다운 조화와 그 위에서 하나님나라를 향한 소망의 거룩한 끈을 굳게 잡고 이 땅에서 해야 할 교회사역을 성실히 수행하는 균형감 있는 신앙, 그것이 우리들을 행복으로 이끄는 신앙의 ‘아름다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