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라은성목사

(28) “보상은 있나?”- 선행

새벽지기1 2017. 1. 12. 08:05

자랑하지 말고 영광 위해 행하라 

어릴 때 “천국에도 상급이 있다”는 말에 대해 어떤 이는 겨우 구원을 얻고, 또 어떤 이는 화려한 면류관을 얻는 반면 다른 이는 개털 모자를 받을 것이라는 부흥사들의 말이 기억난다. 우스꽝스런 질문이지만 과연 그럴까? 하늘에도 상급이 있다고 쉽게 넘어가는 이유는 사도 바울 역시 경주에 비교한 것처럼(고전 9:24), 상을 받는 자는 한 사람 밖에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칼빈은 <기독교강요> 3권 11~18장까지 ‘이신칭의’를 설명하고 있다. 11~14장은 이신칭의에 대한 성질을 설명한다면, 15~18장은 선행 또는 보상에 관한 것이다. 왜 이렇게 길게 설명하고 있는지 <기독교강요>를 읽다보면 당혹스럽기도 하다. 칼빈은 그 상급이란 구원을 의미한 것이라고 설명한다(<기독교강요> 3권 18장 4항).

 

선행과 보상에 관해 살펴보도록 하자. 우선적으로 칭의, 선행, 보상은 같은 맥락에서 설명되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대부분의 신자들은 하늘의 삶이 지상의 삶의 연장선으로 착각한다. 하지만 지상의 것들은 하늘의 것들의 상징들이다. 이것은 우리의 격려와 위로와 교훈을 위한 것이고, 믿음을 강화시키기 위한 ‘일반 성례’이다. 또 참된 신자가 지상의 복을 받는 것은 일반적 원리이다. 물론 욥과 같이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지상의 복을 가지고 참된 신자라고 판단해선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겠다. 아무튼 대체적으로 지상에서 성실하고 진실하게 사는 자는 성경이 약속한 대로 지상의 복을 누리게 된다. 동시에 항상 그렇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선행을 정의 내려 보자. “참된 믿음에서 나온 것”으로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그분의 영광에 이르는 것이고, 우리의 견해 또는 인간의 명령에 근거하지 않는다”(<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서> 91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6장 1항). 따라서 불신자들의 도덕적 행위가 선행이 될 수 없는 것은 그분의 명령에 따른 것도 아니고 그분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이 교회가 임의로 만든 것이나 무슨 행사에 참여하는 것을 선행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것은 선행이 결코 아니다. 아무리 선한 도덕적 행위라도 죄성이 없다고 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선행을 행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의 믿음에 대한 증거이기 때문이다(<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서> 86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6장 2항). 너무나도 명확한 답이다. 올바르게, 정직하게, 겸손하게, 착하게, 진실하게 신자들이 살아야 하는 이유는 자신의 믿음을 지상에서 증명하기 위함이다. 또한 “적들의 입을 막”기 위함이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6장 2항). 사탄은 우리를 그분의 보좌 앞에서 욥에게 행하거나 파우스트에게 행한 악마처럼 우리를 고발할 것이다. 그때 적들의 입을 막기 위함이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의 증거를 꼭 갖고 있어야 한다. 진실한 양심적 행위를 그분이 변호하실 수 있도록 말이다.

 

선행의 힘은 무엇인가? 신자라 하더라도 개인의 의지와 환경에 따라 다르다. 어떤 경우를 감안하더라도 선행을 일으키는 힘은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성령의 도움이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6장 3항). 이는 각기 다른 형편에 따라 성령께서 역사하신다는 것을 전제한다. 누구든 언제든 전도해야 하고, 가난한 자를 도와야 하고, 예배당에서만 예배를 드려야 하고, 헌금을 내야하고, 직분을 맡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성령 하나님은 각기 형편에 따라 각자에게 다르게 가장 선한 방법으로 그 사람에게 역사할 것이다.

 

선행의 자세는? 선행했다고 자랑해서는 안 된다. 인간이 만든 일들을 행했으니 만족하여 자긍할 수 있고, 인간의 힘으로 행하여 얻었으니 자신의 것이라 자랑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선행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그분의 영이 역사하셔서 우리가 행한 것이기에 자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교만이 존재할 수도 없다. 그저 무익한 종이라 고백할 뿐이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6장 5항). 그분의 뜻을 행한 후에 단지 빚을 갚은 것뿐이라고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래서 자랑이란 있을 수 없다. 무엇을 가졌다면 그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받은 것이라 여겨야 한다. 무엇을 잃었으면 하나님의 뜻을 찾아 교훈을 얻어 무엇에서 자신이 부족하고 연약한지 찾았다면 그것만큼 기쁜 것이 없을 것이다.

 

잠언 30장의 아굴은 죽기 전에 두 가지를 이뤄주길 간구한다. 자기기만이고, 자긍이다. 무엇이든지 양심을 속이면서 가져선 안 된다. 헛된 방법으로 취득해서도 안 되고 누려서도 안 된다. 무엇을 받았다면 그것이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 믿고 그분의 영광을 위해 사용될 것을 찾아야 한다.

 

이런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면 자신을 위해선 아무 것도 행하지 말아야 하나? 그렇지 않다. 성령 하나님은 가진 것을 어떻게 사용하고 누릴 수 있는 기쁨의 길도 알리신다. 아무튼 선행을 행했다면 결코 자랑하지 않을 것이고, 인간의 법에 따른 것을 행했기에 자랑이 나올 것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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