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조병수교수

경건 없는 신자는 미신에 빠진다딤전(4:7b)

새벽지기1 2016. 12. 27. 07:28


나는 수년 째 신학교의 신입생들에게 동계 그리스어 강좌를 지도하고 있다. 합격자들은 입학식도 하기 전에 고전어 강좌에 참석하려니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 대가가 혹독한 이유는 한겨울의 매서운 추위 때문만은 아니다. 단어를 외우고 문법을 익히며 문장을 깨우치기 위해서 강좌가 막 끝난 오후시간부터는 개인적으로든지 삼삼오오 그룹으로든지 새벽까지 공부를 하면서 머리에 쥐가 나는 고통을 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개중에 한동안 사회생활을 하다가 신학교에 입학하는 사람들은 훨씬 더 비싼 값을 치르게 된다. 기도와 각오 끝에 은혜를 받고 목회자가 되겠다는 감격을 안고 신학교의 문을 두드리는 부푼 꿈은 그 강좌기간에 산산이 깨진다. 고전어 강좌에는 은혜가 없다. 그렇게 동계강좌를 지옥같이 보내는 동안 나는 독일사람들의 짧은 격언을 자주 반복해서 말해준다: “연습이 대가를 만든다” (�ung macht Meister).

연습 외에 왕도 없어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는 사도 바울의 권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무도 저절로 경건해지지 않는다. 날 때부터 경건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거짓말이며, 가만있어도 경건하게 되었다는 것은 속임수이다. 경건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다. 경건은 자연발생적인 현상과 거리가 멀다. 만일에 누군가가 가만히 있었는데도 경건해졌다면 그것 자체가 불경이다. 경건은 단순히 마음속에 소원한다고 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경건을 소원하는 것과 경건 그 자체는 엄격하게 다른 것이다. 경건이란 심정적인 무엇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경건에 대한 사도 바울의 견해는 너무나도 명쾌하다. 사도 바울에 의하면 경건은 연습의 결과일 뿐이다. 연습하지 않으면 경건은 없다. 경건에 도달하기를 소원하는 사람은 반드시 연습해야 한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는 “경건에 이르기를”이란 말보다 “연습하라”는 말에 더 강한 액센트가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사도 바울은 “경건하라”고 권면하지 않고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고 권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건은 연습의 대가이다. 그러므로 연습해야 한다.

경건 역시 연습이 필요하다

사도 바울이 의도하는 경건의 연습은 육체의 연습과 비교할 때 큰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흡사한 성격을 가진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경건의 연습을 말하면서 육체의 연습을 대조시킨다.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다”(딤전 4:8). 우리가 다 잘 알다시피 육체의 연습은 단련, 연마, 훈련 이런 것이다. 예를 들어 운동선수들은 육체의 연습을 통해서 근육을 강화하고, 지구력을 향상시키며, 민첩성을 얻는다. 그런데 이 같은 소득은 엄청난 육체적인 노력을 전제로 한다. 피땀어린 훈련을 통과한 훌륭한 운동선수만이 세인의 주목을 받는 법이다.


이런 사실은 경건의 연습에도 마찬가지이다. 경건의 전제는 연습이다. 비록 그것이 방식에 있어서 육체적인 연습과 다르다 할지라도, 연습에 임하는 사람이 자기절제, 규칙적인 생활, 끝없는 도전, 이런 요건들을 피할 수 없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경건의 연습을 하는 사람도 잡다한 것들에 대한 신경을 끊고 집중과 몰두를 필요로 한다. 최소한의 생활시간표가 없는 사람이 경건에 도달한다는 것은 거의 바랄 수 없는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영적인 목적을 설정하지 않는 것은 처음부터 경건의 연습과 상관이 없는 것이다. 경건의 연습도 연습이기 때문에 육체의 연습과 비슷한 요건을 채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이다.

연습 없는 경건은 환상일 뿐

조금 뒤에 사도 바울은 경건의 연습과 관련된 몇 가지를 디모데에게 일러줄 것이다(딤전 4:13). 경건의 연습에 많은 사항들이 있겠지만 대표적인 예를 들면 틀림없이 성경연구, 기도, 전도와 같은 사항들을 포함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런 사항들에 전심전력으로 연습하지 않으면 결국 신자는 헛된 미신 (신화)이나 따르는 한심한 사람이 되고 만다. 그런 사람은 마치 경건이 하늘에서 뚝 떨어질 것처럼 생각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못할 것이다. 연습은 경건을 만든다. 칭찬 받을만한 경건은 칭찬 받을만한 연습의 결과이다. 그러므로 연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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