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목회단상

교회 안에 있어야 할 사람들(2) 옳고도 아름다운 사람

새벽지기1 2016. 10. 26. 08:43


2. 옳고도 아름다운 사람 
 
한국교회의 새로운 미래를 활짝 열어가기 위해서는 옳고도 아름다운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 참된 그리스도인이란 참된 인간이 되는 것이다. 신앙에만 투철한 사람이 아니라 인간미가 풍성한 사람이 돼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를 기독교인 만들려고 부르신 것이 아니다. 예수를 따름으로 진정한 인간의 길을 가라고 구원하신 것이다. 그렇다. 구원이란 길게 말할 게 없다. 그냥 인간이 되는 것이다. 인간 이상의 존재가 아니라 단지 인간이 되는 것이면 충분하다. 태초에 하나님이 만드신 그 인간됨을 회복하는 것, 온 세계를 만드신 분과 소통하고, 또 그분이 만드신 온 세계와 소통하며 사는 인간이 되는 것, 그것이 구원이다. 때문에 그리스도인다움은 반드시 사람다움을 통해 드러나야 한다.


그렇다면 사람다움이란 어떤 모습일까? 사람과 삶을 읽어내는데 탁월한 소설가 박완서 씨의 생각을 빌리는 것보다 더 좋은 설명이 없을 것 같다. 그분은 예수님을 ‘옳고도 아름다운 분’이라고 불렀다. 참으로 기막히게 잘 표현했다고 생각된다. ‘옳고도 아름다운 분’ 그렇다. 예수님은 바로 그런 분이셨다. 예수님은 시니컬한 냉소주의자가 아니셨다. 그분은 누구보다도 낡고 부패한 종교의 틀과 종교 지도자들에 대해 비판적이었지만 누구보다도 따뜻한 분이셨다. 하나님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하라고 하시면서도 죄인을 내치지 않으셨다. 스스로 의인이라고 머리를 쳐든 사람이 아니면 누구든지 사랑으로 품으셨다. 용서하시기를 기뻐하셨다. 죄인을 정죄하고 비판하기보다는 용서하시고 보듬으신 후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미래를 향해 보내시는 분이셨다. 그분은 진실로 옳고도 아름다운 분이셨다. 인류의 역사 가운데 그분처럼 옳으시고, 그분처럼 아름다운 분이 또 있을까. 그분은 진실로 인간의 참 전형이셨다.
 
사람이 옳은 길을 가면서 옳은 길을 가지 못하는 사람을 비판하기는 쉽다. 하지만 옳은 길을 가면서도 옳은 길을 가지 못하는 자를 보듬어 주기는 정말 어렵다. 아마 하늘에서 별을 따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일을 멋지게 해냈다. 그분은 그런 삶을 살아냄으로써 예수를 믿는 우리도 그렇게 살라고 말없는 말을 하셨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누구보다도 옳은 사람이 돼야 한다. ‘적당히’는 통하지 않는다. 생활의 구석구석에서 ‘옳음’을 행해야 한다. 그러나 ‘옳음’만으로는 부족하다. ‘옳음’에는 반드시 ‘아름다움’이 동반되어야 한다. 옳은데 아름답지 못한 사람, 아름다운데 옳지 못한 사람은 그리스도인으로서도, 사람으로서도 부족하다. 진정 옳으면서도 눈부시게 아름답고, 진정 아름다우면서도 항상 옳음을 잃지 않는 사람이 진정한 인간이요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라고 믿는다. 예수님이 그러하셨듯이. 그렇다. 옳고도 아름다운 분이셨던 예수님 안에 인간의 원형이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예수님 안에서 그 인간의 원형을 회복해가야 하는 사람이다. 물론 하루아침에 되는 것 아니다. 어쩌면 이생에서는 불가능한 도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옳고도 아름다운 사람이 되는 것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영원히 불가능한 도전을 꿈꾸며 도달할 수 없는 희망을 멀리서 바라보고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믿음 아니던가. 우리가 아직은 예수님처럼 온전하지 못하지만 옳음과 아름다움을 붙잡기 위해 분투하는 것만으로도 한국교회는 새로워질 것이다. 사람들이 와서 쉴만한 교회, 편견과 독선이 사라지고 나그네가 짐을 풀 수 있는 교회, 치유와 회복이 있는 교회, 사랑 깊은 만남이 있는 교회, 세상과 구원의 축복을 나누는 교회, 복의 근원인 교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