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목회단상

교회 안에 있어야 할 사람들(1) 깨어있는 열정의 사람

새벽지기1 2016. 10. 25. 07:42


나는 지금까지 한국교회 안에서 만날 수 있는 세 가지 범주의 사람들이 어떤 특성을 갖고 있는지, 왜 그런 사람들이 양산된 것인지, 그리고 그들의 한계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첫째, 자기 이해의 과정 없이 무조건 믿고 따르는 의존적인 그리스도인, 지식이 없는 열성으로만 뭉쳐있는 사람들로는 교회 왕국을 세울 수는 있겠으나 건강한 교회를 세우기는 어렵다는 것.

둘째, 매사에 비판적이고 냉소적인 사람들로는 어떤 일도 창조적으로 해낼 수 없다는 것.

셋째, 개인적인 신앙에 안주하는 사람들 역시 교회의 외형을 크게 하는 데는 일조할 수 있으나 교회의 체질을 건강하게 만드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해가 되기 십상이라는 걸 말했다.

나는 정말 아픈 마음으로, 내 수치를 폭로하는 심정으로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양산된 것은 전적으로 목회자의 책임이 크다는 사실을 이야기했다. 이번에는 교회 안에 있어야 할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1. 깨어있는 열정의 사람

한국교회의 새로운 미래를 활짝 열어가기 위해서는 신앙과 정신이 깨어있는 아멘파가 필요하다. 목회자들이 던져주는 쪽 복음, 쉬운 복음, 종교화된 복음에 만족하지 않고 온전한 복음,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알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성경의 세계로 들어가는 진짜 그리스도인이 필요하다. 성경은 지식이 없는 소원은 선하지 못하다고(잠19:2), 미련한 자는 지식을 미워한다고 했다(잠1:22). 또 의인은 그 지식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고 했다(잠11:9). 바울은 구원 얻은 새사람을 가리켜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은 자라고 했다(골3:10). 그렇다. 복음은 지식에까지 미쳐야 한다. 지성과 세계관에까지 미치지 못하는 복음은 종교적 세계에 갇혀 신앙이라는 게토 안에 머물게 된다. 하나님이 만드시고 통치하는 광대한 세계의 현실을 신앙 안으로 끌어들이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삶을 변화시키고 구원하는 복음 고유의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된다.

복음은 인간의 인격과 존재 전체를 새롭게 하는 능력이 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피부에서 뼈 속 깊이까지, 생각과 의지와 감성까지 새롭게 하는 능력이 있다. 복음은 부분적인 것에 머무르지 않는다. 복음이 한 사람을 만나면 그 복음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전인(全人)과 전생(全生)을 변화시킨다. 그런데 만일 지성을 새롭게 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전인을 새롭게 하며, 전생을 새롭게 할 수 있겠는가? 인간과 삶의 변화라고 하는 것이 지성을 통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법. 때문에 지성이 구원받지 못하고서는 구원이란 없다고 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목회자는 성도들의 지성을 구원하는데 집중해야 한다. 성경적인 세계관을 열어주는데 집중해야 한다. 만일 지성을 구원하는데 집중하지 않고 신앙적 열심을 강화하는 데만 몰두한다면 그런 목회는 목회의 본령을 벗어난 삯꾼 목회요 매춘 목회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인격과 지성을 변화시키는 목회, 삶의 방식을 변화시키는 목회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목회자가 먼저 자기 지성을 구원하는 일에 헌신해야 한다. 목회적 방법론을 배우는 일에 정신없이 쫓아다닐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멀티 세계를 볼 수 있는 지성을 단련하는 일에 정진해야 한다. 그래서 쪼가리 성경지식을 전하는 자가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진짜 이야기를 읽어낼 수 있는 목회자, 성경적인 지혜의 눈으로 세상과 삶을 읽어낼 수 있는 목회자가 되기를 힘써야 한다. 이것이 목회자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책무라고 믿는다.


성도들 역시 내면의 공허감을 신앙적인 열심과 심리적인 확신으로 채우겠다고 덤빌 것이 아니라 말씀에 대한 깊은 묵상과 생활을 반추하는 성찰을 통해 흐트러진 삶을 정돈하는데 힘써야 한다. 어둠과 모순으로 가득한 세상과 삶을 저주하거나 원망하기보다는 현실의 빛과 어둠을 긍정하고 보듬으며 초극할 수 있어야 한다. 말씀에 대해서는 ‘예’ 하고, 말씀을 이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니오’ 할 수 있는 예리한 분별력과 겸손한 용기가 있어야 한다. 그저 눈 감고 목회자를 따라가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목회자와 함께 눈을 뜨고 동행할 수 있는 성도, 하나님나라를 향하여 뜨겁게 헌신할 수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이런 성도를 일컬어 나는 깨어있는 아멘파라고 부르고 싶다. 교회 안에 깨어있는 아멘파가 많아질 때 한국교회는 주님의 몸인 교회로 아름답게 회복되어져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