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과 함께 춤을? 너무 경박스러운가? 그렇다 해도 상관없다. 나는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예수님과 함께 춤을 춘다. 몸의 춤이 아닌 마음의 춤, 영혼의 춤을 소리 없이 춘다. 생활의 부족함이 없어서가 아니다. 인격이 남달리 훌륭해서가 아니다. 아는 자는 알겠지만, 나는 속속들이 완악하고 부패한 자이다. 부족한 것으로 말하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자이다. 생활 또한 지극히 단순하고 자잘한 일상을 반복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과 시끌벅적하게 교류하는 것도 아니고, 생활의 변화가 큰 것도 아니다. 사람들 보기에는 무미건조하기 그지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마음과 영혼은 날마다 예수님과 함께 춤을 춘다. 대지의 낮은 곳을 흐르지 않는 듯 흐르는 강물처럼, 내 영혼 또한 삶의 저 낮은 곳을 관통하며 춤추지 않는 듯 춤을 춘다. 물론 매순간 뜨겁고 강렬한 춤을 추는 건 아니다. 생활의 도처에 흩어져 있는 걸림돌을 만날 때에는 춤의 리듬이 흐트러지기도 하고, 고통의 몸짓으로 바뀌기도 한다. 그러나 이내 곧 고유한 춤의 리듬으로 되돌아온다.
내가 삶의 춤을 출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삶이 온통 선물이기 때문이다. 돌아보라. 삶의 근본 조건인 시간과 공간이 다 선물이다. 시간과 공간을 수놓은 역사와 장소 또한 선물이고, 삶의 주체인 나 까지도 사실은 선물이다. 진실로 그렇다. 우리 모두는 내가 만들지 않은 공기를 호흡하고, 내가 만들지 않은 땅을 걷고, 내가 만들지 않은 태양의 빛을 받고, 내가 만들지 않은 꽃과 열매를 보고 먹으며 살고 있다. 자연만 그런 게 아니다. 내가 만들지 않은 문학, 내가 건설하지 않은 도시, 내가 짓지 않은 집, 내가 작곡하지 않은 음악, 내가 부르지 않은 노래, 내가 발견하지 않은 지혜, 내가 만들지 않은 책, 내가 만들지 않은 옷, 내가 만들지 않은 너와 어울려 살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예수님 안에서 내가 만들지 않은 하나님나라의 영광을 맛보고 바라보며 살고 있다. 그러니 어찌 기쁨과 감사의 춤을 추지 않을 수 있겠는가?
둘째, 하나님이 나를 아시기 때문이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그분은 오직 사랑으로만 아시니까, 사랑 없이는 앎도 없으니까, 그분에게 앎과 사랑은 나뉠 수 없는 하나이니까, 하나님이 나를 안다는 것은 곧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과 같다. 내가 그분을 처음 알게 된 순간 발견한 것도, 그분이 나를 안다는 것이었고, 동시에 나를 사랑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그분 앞에서 춤을 추는 것은, 단지 그분이 나를 아셔서(사랑하셔서)가 아니다. 속속들이 완악하고 부패한 나를 아시기(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참으로 묘한 일이지만 진실로 그렇다. 그분께서 나의 완악함과 부패함을 깊이 꿰뚫어 아시기(사랑하기) 때문에, 오히려 나는 그분 앞에서 한없이 자유롭고 편안하며 기쁘고 행복하다.
물론 그분 앞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진다. 내놓을 것 하나 없는 빈털터리가 된다. 은총 외에는 구할 것이 없는 가련한 신세가 된다. 하지만 동시에 엄마의 품에 안긴 아이처럼 한없는 자유와 편안함을 느낀다. 지금도 나는 그분 앞에서 어린 아이다. 나를 위장하거나 포장할 필요를 전혀 느끼지 않는 어린 아이다.
첫 만남부터 그랬다. 하나님을 처음 만날 때부터, 그분은 내가 얼마나 완악하고 부패한 놈인지를 아시면서도, 그런 나에게 한 번도 눈살을 찌푸리지 않으셨다. 한 번도 근엄한 표정을 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언제나 비루하기 그지없는 나를 품어주셨고, 빈털터리인 나를 기뻐하셨고, 만물의 찌꺼기와 같은 나를 사랑하셨다. 정말 그랬다. 그분의 품은 세상 그 무엇보다도 따뜻하고 푸근했다. 어머니의 품보다도.
그래서였을까? 나는 지금까지 그분 앞에서 경직된 적이 없다. 그분의 불꽃같은 눈앞에서 애통하기는 했지만 경직된 적은 없다. 항상 어린 아이처럼 편안하고 행복했다. 무엇에도 걸리지 않는 자유,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안식을 누렸다.
하여, 사람들 앞에서는 추지 못했던 춤을 그분 앞에서는 출 수 있었다. 누구도 알지 못하는 나만의 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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