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생활, 돈과 사람은 한 덩어리다. 돈이 가는 곳에 사람의 생활이 있고, 돈이 가는 곳에 사람의 영혼이 닿아 있다. 돈은 지갑에서 나가지 않는다. 돈은 사람의 마음과 영혼에서 나간다. 물론 자기를 과시하고 포장하기 위해 돈을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돈의 사용 내력은 그 사람의 관심사와 가치관, 영혼의 상태를 반영하는 것이 사실이다.
국가를 경영하는 정부도 그렇다. 앞으로 출범할 박근혜 정부가 어떤 정부인지를 알려면 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보면 된다. 정부가 하는 말이 아니라 정부가 지출하는 돈의 내력을 보면 그 정부의 실체를 정확히 알 수 있다. 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한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를 알려면 헌금하는 성도들의 태도와 헌금 사용 내력을 보면 된다. 헌금 사용 내력이 유일한 잣대일 수야 없겠지만, 매우 중요한 잣대임에는 틀림없다. 옳다. 돈을 어떻게 사용하는가는 경제적인 문제를 넘어 영적인 문제다.
그렇다면 교회는 돈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까? 당연히 신앙적 가치에 맞게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사람마다 신앙적 가치의 우선순위가 다르고, 교회마다 처한 형편이 다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말하는 것이 무의미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교회의 현실을 반추하면서 아주 소박하게 세 가지만 말하려 한다.
첫째, 교회의 모든 재정 관리는 하나의 공식 창구로 일원화되어야 하고,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재정 창구의 일원화와 투명성은 양보할 수 없는 재정 사용의 제일 원칙이다. 특히 목회자가 교회 재정에 손대는 일은 절대 삼가야 한다. 이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런데 어떤 교회는 담임목사와 재정부로 이원화되어 있는 경우가 있고, 미자립 교회의 경우 외부 지원금이 교회 재정에 합산되지 않고 목사 개인 통장으로 들어가는 경우도 있으며, 교회 재정 상황을 성도들이 전혀 모르는 경우까지도 있다.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사실 교회는 모든 일에 있어 공명정대해야 한다. 하지만 특히 돈 문제에 있어서는 사사로움이 있어서는 안 된다. 교회의 헌금은 수입에서 지출까지 한 점의 의혹도 없이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하고, 목회자가 좌지우지할 수 없는 공식 창구로 일원화되어야 한다.
둘째, 교회는 최대한 빚이 없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빚이 없을 수야 없겠지만 최대한 빚이 없어야 한다. 작금의 한국교회는 빚 없는 교회가 거의 없다. 큰 교회는 큰 교회대로, 작은 교회는 작은 교회대로 빚에 시달린다. 특히 교회당 건축을 한 교회는 수십억에서 많게는 수백억 수천억까지 빚이 있다. 상가 건물을 임대해 사용하는 작은 교회도 대부분 빚이 있고, 월세에 허덕이는 교회도 부지기수다. 물론 상황에 따라 빚을 질 수 있다. 빚 없이 교회를 설립하고, 빚 없이 교회당을 건축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자가 교회 월수입의 10%를 상회하는 것은 최대한 피하는 것이 좋다. 10%를 상회하는 빚은 욕망에 무릎 꿇은 결과일 가능성이 많으니까 말이다.
빚진 교회는 빛이 될 수 없다. 한국교회가 교회 본연의 영적인 깊이로 들어가려면 속히 빚의 수렁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믿음으로 빚을 내는 악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한국교회가 빚의 수렁에서 빠져나오는 길은 멀리 있지 않다. 성장의 욕망을 내려놓으면 된다. 믿음의 거품을 빼면 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큰일을 하겠다는 거룩한 비전마저도 겸허히 돌아보면 된다.
셋째, 교회의 재정 지출은 이상적이기보다는 상식적이고 현실적인 게 바람직하다.
언제부터인지 교회 재정의 건강성을 담보하기 위해 교회 창립 때부터 아예 재정의 몇 퍼센트를 교회 밖으로 내보낸다고 못 박는 것을 보았다. 정말 박수 치고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교회 재정이 충분히 안정된 경우에 한해서만 환영한다. 재정적으로 자립하지 못한 교회, 외부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 하더라도 목회자 사례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교회가 그렇게 하는 것은 반대다. 사실 재정적으로 안정되지 못한 교회가 재정의 40%를 선교와 구제를 위해 사용한다며 교회 정관에 못 박는 것은 무모하기 이를 데 없는 비현실적 이상이다. 교회의 재정 상황은 고려치 않고 무조건 재정의 몇 퍼센트를 밖으로 내보내느냐로 교회의 건강성을 평가하는 것 또한 심각한 오류이며 억지다. 아니, 이것은 오류를 넘어 위선이고, 자기 의에 대한 지나친 욕망이다.
한국교회 안에는 아주 오래된 관행이 있다. 목회자는 성도에게 하고, 성도는 목회자에게 하는 익숙한 관행이 있다. 신앙과 진리의 이름으로 지나친 헌신을 강요하고, 또 신앙과 진리의 이름으로 인간적인 상식과 현실을 무시하는 관행 말이다. 이 관행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 한국교회 안에는 무례와 몰염치가 춤을 추고 있고, 외식이 화려한 진리의 옷을 입고 활보하고 있다.
이제는 오래된 관행을 멈추어야 한다. 그리스도인 특유의 신앙적 옹졸함도 벗어야 한다. 특히 돈에 대해서는 일절 깨끗해야 한다. 동시에 현실적이어야 한다. 신앙의 이름으로 인간적인 상식과 현실을 무시해서도 안 되고, 인간적인 상식과 현실을 내세우며 신앙적 가치를 외면해서도 안 된다. 신앙적 가치의 우순순위를 깊이 고민하면서, 동시에 지극한 현실의 눈으로 재정 사용의 적합성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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