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두 바퀴로 굴러가는 마차와 같이 교회는 목회와 교회 운영이라는 두 바퀴가 서로 보조를 맞추고 조화를 이루어야만 목표점을 향해 굴러갈 수 있습니다. 두 바퀴 중 하나라도 빠지면 교회로서의 길을 갈 수 없습니다. 목회라는 바퀴가 빠지면 교회는 종교 업체로 전락하게 되고, 교회 운영이라는 바퀴가 빠지면 교회는 종교 강연장이 되고 맙니다. 또 목회와 교회 운영이 마구 뒤섞여도 교회가 효율적으로 굴러가지 못합니다. 필요 없는 갈등과 비민주적인 전횡에 몸살을 앓기 쉽고, 모순과 혼돈의 와중에 빠지기 쉽습니다.
2. 그렇다면 목회와 교회 운영이 어떻게 다를까요? 목회는 신앙의 양식을 먹이는 일, 한 사람을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세우는 일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이 지시하는 것을 바라보게 하고, 하나님 앞에서 주체적인 순종의 삶을 살도록 돕는데 초점이 있습니다. 반면에 교회 운영은 교회가 돌아가기 위해 필요한 제반 일(여러 조직, 성가대 운영, 식사 준비, 교회당 청소, 애경사 참여, 친교 등)을 관장하고, 해야 할 사역(선교, 전도, 구제, 봉사 등)을 기획하고 실행하는데 초점이 있습니다. 교회 운영은 업무적인 성격이 강한데 비해 목회는 업무적인 성격이 거의 없습니다. 교회 운영은 행정과 조직 관리가 필요한 반면 목회는 행정이나 조직 관리가 거의 필요치 않습니다. 교회 운영은 프로그램이나 매뉴얼이 도움이 되지만 목회는 프로그램이나 매뉴얼이 별 도움이 안 됩니다. 교회 운영은 조직적이고 체계적이지만 목회는 인격적이고 유기적입니다. 이처럼 교회 운영과 목회는 일의 성격과 내용이 상당히 다릅니다.
3. 그렇다고 이것은 목회의 영역이고, 저것은 교회 운영의 영역이라고 무 자르듯 할 수는 없습니다. 크게 보면 교회 운영 또한 목회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교회 운영은 경영이 아닙니다. 교회 운영은 하나님나라를 드러내는 구체적인 양식입니다. 때문에 목회가 아닌 교회 운영이란 없다고 해야 합니다.
하지만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기 위해서는 목회와 교회 운영을 세심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초대교회 사도들이 구제하는 일이 많아져 기도하는 일과 말씀 전하는 일에 전무하지 못하게 되자 일곱 집사를 세워 구제하는 일을 맡겼던 것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행6:1-7). 초대교회는 일곱 집사에게 교회 운영에 속한 일을 위임함으로써 구제에서 빠지는 자들의 불평을 잠재울 수 있었고, 사도들은 목회에 전념함으로써 날마다 구원받는 자가 더해지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조치였습니다.
4. 지금도 이 원칙은 매우 중요합니다. 교회 운영에 속한 일 때문에 목회의 본령(말씀을 먹이는 일과 성도를 건사하는 일)이 소홀해지면 안 됩니다. 그것은 교회에 큰 해악을 끼치는 일입니다. 한국교회 안에는 이런 폐해가 매우 많습니다. 목회에 전념해야 할 목회자가 교회 운영에 너무 깊숙이 개입할 뿐 아니라 너무 많이 떠맡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폐해가 정말 많습니다. 목회의 질은 수준 이하로 떨어졌고, 교회는 끝없이 자중지란에 빠졌습니다. 한국교회가 건강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초대교회처럼 목회와 교회 운영을 현실적으로 구분하고 효율적으로 분업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목회자는 목회의 본령에 충실하도록 배려하고, 성도는 교회 운영에 책임 있게 나서는 지혜로운 결단을 해야 합니다.
5. 목회와 교회 운영이 효율적인 분업을 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영역을 지배하거나 침범해서는 안 됩니다. 목회가 교회 운영의 영역을 지배하거나 침범하면 교회 운영의 합리성과 효율성이 떨어지고, 교회 운영이 목회의 영역을 지배하거나 침범하면 목회는 세속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반대로 목회와 교회 운영이 서로의 영역 주권을 주장하면서 대립해서도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교회는 힘겨루기를 하게 되고, 결국은 자멸하게 됩니다.
교회가 건강하게 서기 위해서는 목회와 교회 운영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피차 개입할 수 있어야 합니다. 피차 겸손하게 개입하면서 조율할 수 있어야 목회와 교회 운영이 고유의 기능을 효율적으로 발휘할 수 있고, 그럴 때 비로소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교회로 설 수 있습니다.
6. 다만 한 가지 유의할 대목이 있습니다. 목회와 교회 운영이 마차의 두 바퀴와 같지만 동시에 몸으로 비유한다면 목회는 머리이고 교회 운영은 몸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머리와 몸의 관계는 매우 분명합니다. 머리와 몸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모든 것이 상호 연결되어 있습니다. 머리는 몸을 위해 존재하고, 몸은 머리를 통해 활동합니다. 당연히 목회와 교회 운영도 쌍방통행이어야 합니다. 몸 위에 군림하는 머리는 결코 몸의 머리일 수 없습니다. 하지만 몸이 머리를 주관하지 않고 머리가 몸을 주관하듯 목회가 교회 운영을 인도하는 길잡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불문가지의 진실입니다. 교회 운영은 언제나 목회와 보조를 맞춰야 하고, 목회를 온전케 하기 위해 기획되고 시행되어야 합니다.
7. 그런데 앞서 말한 것처럼 교회 운영은 경영이 아닙니다. 교회 운영은 하나님나라를 드러내는 구체적인 양식입니다. 때문에 교회를 운영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지식이나 경험이 많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교회 운영에 참여하는 자는 무엇보다도 영적으로 성숙해야 합니다. 하나님나라의 가치관에 눈떠야 합니다. 자기중심적 폐쇄성을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합니다. 상대방에게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합니다. 맡은 일을 책임질 줄 알아야 합니다. 만일 교회 운영에 참여하는 자들이 영적으로나 인격적으로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교회는 이내 곧 커다란 갈등과 혼란에 휩싸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나라에 역행하는 일들이 벌어지게 될 것입니다. 때문에 교회 운영에 참여하는 자를 세울 때에는 이런 면들을 깊이 고려해야 합니다. 또한 교회 운영에 참여하는 자들은 대부분 자기 직업이 따로 있기 때문에 교회 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가 없습니다. 교회 운영에 대한 깊은 이해도 부족할 수밖에 없고, 여러 가지 면들을 충분히 숙고하기도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8. 우리는 이러한 현실적인 어려움과 한계를 겸허히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목회와 교회 운영이 교회의 두 바퀴라는 것,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기 위한 아름다운 분업이라는 것, 목회자와 성도는 이토록 아름다운 분업(하나님나라의 분업)을 하도록 부름 받았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닙니다. 원리적으로는 매우 간단해보이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미세하게 겹치는 부분도 많고,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일들도 많습니다. 지혜와 배려, 양보와 책임, 스스로를 교정하는 배움의 태도가 없이는 풀기 어려운 일들도 많습니다. 작은 미숙과 실수, 의사소통의 차이에서 오는 오해로 인해 생각지 않은 파문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행착오를 하면서 배우고, 서로를 인내하면서 하나씩 길을 찾아간다면 충분히 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주님의 교회는 주체와 객체가 따로 없는, 공급자와 수요자가 따로 없는 하나님의 왕 같은 제사장들의 모임이기에 목회와 교회 운영이라는 효율적 분업을 해야 하고,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 모두 겸허한 마음으로 이 길을 걸어갑시다. 정녕 큰 유익과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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