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바친다고 했으면 바치는 것이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어”
여기저기서 청해서 강의를 하고 무슨 수양회 같은 데 가서 강의를 더러 해보면서 품게 되는 생각인데, 나 자신도 연약하고 볼 것 없지만 참으로 주의 일을 하겠다는 사람들과 주의 일을 한다는 사람들이 얼마나 참 이상한 생각들을 가지고 움직이는지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너무나도 편의주의에 빠져 의식주 문제를 언제나 우선적으로 생각을 하고, 남들 위에서 작은 권력을 휘두르며 그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는 식의 사상을 가지고 움직이는 사람들이 소수가 아니고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될 때에 정말 앞이 캄캄합니다.
참으로 이것 한심스럽구나, 신학교육을 한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원수들을 만들어 놓는 것 아닌가? 되지 못하고도 된 줄로 알고서 교회에 나가 딴 짓 하는 그러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원수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신학생들이 탕수와 같이 많아진다는 이 시대가 그렇게 낙관할 시대는 아닙니다. 우리는 파수꾼이 되자고 나선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파수꾼의 자격은 어떠한가?
파수꾼이라는 말 자체가 지키는 자라는 뜻인데 지키는 자의 고귀한 덕목은 진실함입니다. 지키는 자는 자기의 신변이 어떻게 되는지를 돌보기보다 자신이 지키는 그 자리를 지키다가 죽는 겁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실일관이지요.
상관 앞에서 한 번 ‘예’ 했으면 ‘예’로 일관해야지 달리 못한다 말입니다. 그랬다가는 목이 달아납니다. 하물며 하나님 앞에서 지키는 파수꾼이라 할 때는 너무나도 문제가 심각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분이시기에 더 무서운 분입니다. 우리 인생들이 일하는 방법으로 아니하시고 초월하고 오묘하신 방법으로 일을 하시니 참으로 두려운 분입니다.
우리가 그분 앞에서는 말을 함부로 할 수도 없고 행동을 제멋대로 해볼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일단 몸을 바친다고 했으면 바치는 것이지 내 마음대로 변경하지 못하는 것이며 내 좋을 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이 길입니다. 그러므로 파수꾼에게 있어서 중요한 자격은 그 진실성입니다.
옛날 평양신학교의 스테이시 로버츠(Stacy L. Roberts, 1881-1946)라고 하는 교장 선생님이 늘 하시는 말씀은 “재주 없어도 진실하면 됩니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 그렇게 필요한 것이 진실 아닙니까?
초라해 보여도 내가 그것을 지키겠다고 했으면 지키는 것이 진실이지요. 내 좋을 대로 이탈해 나가고 달리 처신하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우리가 사명에 죽고 진리 파수에 생명을 바치는 그때에 하나님이 역사해서 일이 되는 겁니다.
출처 / “종교 직업인은 아닌가”,
『부르심, 네 꼴 보고 은혜를 받겠느냐』 <영음사> pp.7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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