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존 칼빈

회개와 중생 / 칼빈

새벽지기1 2016. 7. 23. 07:13


회개와 중생

죽이는 일살리는 일’-이 두 가지 일은 그리스도 안에 참여함으로써 우리에게 일어난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음에 진정으로 참여하면 우리 옛사람이 그의 능력으로 십자가에 못박히고 죄의 몸이 멸하여져서(6:6) 우리의 본성의 부패성이 더 이상 활개를 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의 부활에 참여하면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의에 합당한 새로운 생명 속으로 일으킴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 마디로 말해서 나는 회개를 중생으로 이해하는데 그 유일한 목적은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일그러지고 거의 지워져 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우리 속에 회복시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바로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3:18)

또한 다른 구절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가르친다오직 성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 ( 4:23, 24), '[너희가]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쫓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3:10).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혜로 얻는 이 중생으로 말미암아 첫 사람 아담을 통해서 타락하여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의를 다시 회복하게 되는 것이다.

주께서는 그가 양자로 삼아 생명을 유업으로 받게 하신 모든 자들을 이렇게 온전히 회복시키기를 기뻐하시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회복은 한 순간에나 하루에 혹은 일 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속적인 그리고 때로는 아주 더디기도 한 과정을 통해서 그의 택한 자들 안에서 육체의 부패성들을 제거하시고, 그 죄책을 깨끗게 하시며 그들을 성전으로 거룩히 구별하시며, 참된 순결에게 이끌리는 모든 성향을 회복시켜 가시므로 하나님의 택한 자들은 평생토록 회개를 실천하며 또한 이러한 싸움이 죽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종결될 것임을 이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저 몹쓸 논쟁가요 배도자인 스타필루스(Staphylus)의 부패성은 너무도 극심하다. 내가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근거로 하나님의 형상 (고후4:4)의와 진리의 거룩함"(참조 엡4:24)으로 해석하자 그것에 대해서 그는 내가 현세의 삶의 상태를 하늘의 영광의 상태와 혼동하고 있다고 떠벌리는 것이다. 마치 무언가를 정의할 때에 그것을 순전하고도 완전하게 정의할 필요가 없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자 그렇다고 해서 이런 나의 논지가 성정의 여지를 부인하려는 것은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오히려 누구든 하나님을 가까이 닮으면 닮을수록 하나님의 형상이 그의 안에서 더욱더 빛난다는 것이다. 신자들로 하여금 이 목표에 도달하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회개의 경주를 명하시며 따라서 그들은 평생토록 그 경주를 경주해야 마땅한 것이다.

 

- 칼빈의 기독교 강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