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조나단에드워즈

구속 사역의 시작; 여인의 후손 약속과 희생제사 제도 / 조나단 에드워즈

새벽지기1 2016. 6. 27. 13:37

 

"옷같이 좀이 그들을 먹을 것이며 양털같이 좀벌레가 그들을 먹을 것이나 나의 공의는 영원히 있겠고 나의 구원은 세세에 미치리라”(사51:8)

 

교리: 구속 사역은 하나님께서 인간이 타락한 후부터 세상 끝날까지 수행하시는 활동이다.

 

인간이 타락하자 즉시 그리스도는 중보 사역을 시작하셨다. 그때 그리스도는 중보자로서의 사역과 직분을 자신의 임무로 삼았다. 그리스도는 창세 전에 그 일을 맡았고, 인간의 중보자로 오셔서 그 직분을 감당하기로 영원 전에 아버지와 약속하셨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하자 비로소 그 시기가 왔다. 그리스도는 직접 거룩하고 무한한 그러나 상처받은 하나님과 상처를 준 인간 사이로 걸어가셨고, 자신의 중보 사역을 받아들이셨다.

 

인간이 타락하자 즉시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 직분을 감당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자비가 인간을 향해 즉각 주어지기 시작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중보자가 없었다면 타락한 인간에 대한 자비도 절대로 없다. 만일 하나님이 자비로 사탄을 저지하지 않으셨다면, 인간은 즉각 사탄의 희생물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직분을 철저히 감당하는 것으로 타락한 인간을 보살피신다. 그리스도는 이후로도 선지자 직분을 감당하심으로써 인간을 가르치고, 제사장 직분을 감당하심으로써 타락한 인간을 위해 중재하신다. 계속 교회와 인간 세상을 보호하고 짐을 대신 짊어지는 책임을 감당하신다. 대원수인 사탄이 인간을 정복하고 패배시켰을 때, 사탄을 반대하고 정복할 임무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위임되었다. 그 때부터 그리스도는 교활하고 강력한 원수와 맞서는 책임을 졌다. 그리스도는 이처럼 만군의 주로서, 그들의 구원의 수장으로임명되고, 이후로 항상 그 자격으로 활동하셨으며, 그래서 세상에 나타나셨으며 세상 끝 날까지 그렇게 활동하실 것이다. 그때부터 이 아래 세상은 그 모든 일이 하나님의 아들에 의해 좌우되었다. 왜냐하면 인간이 죄를 범했을 때 하나님 아버지는 인간에 대해서는 즉시 관계를 끊으셨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하나님은, 인간을 가르치거나 다스리거나 인간에게 어떤 유익을 베푸시거나 간에, 오직 중보자를 통해서만 인간에게 관심을 두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수시로 그의 교회와 백성에게 행하신 것, 그들에게 말씀하신 것 그리고 그들에게 자신을 계시하신 것 등을 우리가 구약성경을 통해 읽을 때, 그것은 특별히 삼위일체 하나님 가운데 제2위격에 대한 사실임을 알아야 한다. 이는 요1:18을 통해 분명히 주장될 수 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불린다(골1:15). 이것은 성부 하나님은 보이지 아니하시지만,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형상 또는 상징으로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보이시게 하거나 하나님의 교회가 종종 하나님에 대한 가견적인 형상을 갖게 되었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특별히 그리스도는 종종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다.

 

또한 이 아래 세상은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대한 보호와 통치권을 갖고 계시고, 자신의 구속 계획에 맞추도록 세상을 규제하시기 때문에 그리스도에 의해 좌우되어 왔지만, 어떤 면에서 그것은 전체 우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리스도가 수난 후 하늘로 승천하셔서 장엄하게 천국의 왕으로 하늘 보좌 위에 앉으셨을 때, 새 예루살렘의 빛이신 어린 양으로서 이 태양이 천국에 떠올랐다. 그러나 그 빛은 타락 후에 즉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처럼 그리스도는 인간이 타락한 직후에 그 직분을 감당하기 시작하셨고, 세상이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그의 교회에 대한 모든 중대한 섭리들이 속해 있는 그 사역을 시작하셨다.

 

타락 직후 복음은 창3:15의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라는 말씀으로 가장 먼저 땅에 계시되었다. 이 계시는 그리스도가 선지자 직분으로 말미암아 행하신 구속 사역의 첫 번째 활동이었다. 이 계시는 타락의 흑암이 들어온 이후에 복음의 빛이 첫 번째로 비친 여명이었다. 여자의 후손으로 말미암는 은총의 계획에 대한 확실한 암시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땅에 오심에 대해 주어진 첫 번째 약속이었고, 첫 번째 예언이었다.

 

타락 직후에 희생제사 관습이 그리스도가 오셔서 자신을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바쳐질 때까지 그리스도가 드릴 희생제사의 전형적인 모형으로 정해졌다. 희생제사는 모세의 레위 제사장법보다 훨씬 전에, 하나님의 가시적 교회가 땅에 처음 세워졌을 때, 하나님이 정하신 예배 의식 가운데 한 부분이었다. 희생제사는 자연숭배의 하나가 아니었다. 본성의 빛은 인간에게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짐승을 바치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그리고 희생제사가 본성의 법이 명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것이었다면, 희생제사는 인간에게 주어진 어떤 적극적인 명령에 의해 수립된 것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신이 정하지 않고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은 예배는 싫어하신다고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다(사29:13).

 

하나님께 희생제사를 드리는 관습이 타락 직후에 세워졌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은 성경이 아벨이 양의 첫 새끼를 드린 것은 믿음으로 드린 것이고(히11:4), 하나님이 그의 제물을 받으셨다고(창4:4)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제사가 그때 처음 제정된 제도라는 증거가 전혀 없다. 아벨 역시 이미 세워져 있던 제도를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창3:15에서 하나님이 은혜 언약을 계시하신 직후에 정해진 것으로 보는 것이 가장 개연성이 높다. 창3:15의 언약과 약속은 희생제사 관습이 세워지게 된 근거이기 때문이다. 그 약속은 <세상 끝 날에> 완료될 구속 사역이라는 이 영광스러운 건물 속에 놓인 첫 번째 돌이었다. 그리고 이 건물 속에 놓인 그 다음 돌은 위대한 그리스도의 희생제사의 모형이 되는 희생제사 제도였다.

하나님이 뱀에게 판결을 내린 후에 여자와 남자에게 하신 다음 조처는 가죽옷을 지어 입힌 것이다.


대다수 신학자들에 따르면, 그것의 희생제사에서 죽임을 당한 짐승의 가죽으로 간주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홍수 때까지 희생 제사에서 짐승들을 바치기 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인간이 짐승들을 죽여도 되는 경우를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홍수 때까지는 일반 음식으로 짐승의 고기를 먹는 것이 금지되었다. 이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 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공의로 옷을 입게 되는 것에 대한 생생한 상징이었다. 이것은 우리의 벌거벗은 몸에 우리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의 옷이 입혀진 것처럼, 우리의 벌거벗은 영혼도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가죽은 생명을 상징하고 “가죽으로 가죽을 바꾸니”(욥2:4)는 ‘생명으로 생명을 바꾼다’는 뜻이다. 우리의 첫 조상이 희생제물의 가죽으로 옷이 입혀진 것은 광야에서 교회를 상징하는 성막이 마치 피 속에 잠겨 있는 것처럼 붉은 물들인 숫양의 가죽으로 덮여진 것과 같고, 그것은 곧 그리스도의 공의가 그분이 보혈을 흘리게 만든 죽음의 고통을 거친 후에 주어진 것을 상징한다.

 

창3:15의 약속이 타락 이후에 주어진 예언 가운데 복음의 빛에 대한 첫 번째 여명이었던 것처럼, 희생제사 제도는 그리스도의 오심을 예시하기 위한 모형 가운데 첫 번째 예시였다. 그 약속은 타락 이후에 구속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의 선지자 직분에 따라 행해진 첫 번째 약속이었다. 희생제사 제도는 타락 이후에 구속 사역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에 따라 그의 가시적 교회에 그리스도를 특별히 보여 주는 첫 번째 사실이었다.

 

이 희생제사 제도는 그리스도의 오심과 우리의 구속의 성취를 준비하기 위해 행해진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구약의 희생제사는 그리스도와 그의 구속에 대한 구약의 모든 모형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하나님이 죄를 속량하기 위해서는 화목제물이 필요하다는 것을 하나님의 가시적 교회의 심령들 속에 새겨 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제도는 가시적 교회에 위대한 희생제물을 계시하는 영광의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길을 예비할 뿐만 아니라 타락 이후로 모든 민족이 이 제도로부터 희생제물을 드리는 관습이 파생됨으로써 인간 세상에 두루 퍼지게 되었다. 속죄를 위해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는 이 관습은 모든 민족에게 공통적인 관습이 되었다. 아무리 야만적이라도, 그 관습이 없는 민족은 발견하기 어렵고, 그것은 기독교의 진리성을 입증하는 유력한 증거가 된다.

 

하나님은 타락 직후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 사람들의 영혼을 실제로 구원하기 시작했다. 이 때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로서 그 사역을 새롭게 자신에게 담당시킨 그리스도는 구원 사역을 시작하심으로써, 처음으로 자신의 왕직을 수행하신 증거를 보여 주셨다. 실제로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사역을 통해 빛이 열매들 속에서 처음으로 비추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아담과 하와가 그리스도의 구속의 첫 열매였다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그리스도가 중보자의 사역을 <인간이 타락한> 즉시 시작했기 때문에, 참으로 하나님이 그들에게 가죽옷을 만들어 입히셨을 때,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의 첫 조상들을 그리스도의 공의로 옷 입히신 증거라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것은 하나님이 구속 사역을 벌써 시작하신 증거였다. 그 때 하나님은 철천지원수인 마귀를 좇아내심으로써, 믿음을 버리고 마귀의 첫 포로가 된 두 사람을 구원하셨다. 그리스도는 첫 포로들을 해방시킴으로써 그것을 마귀에 보여 주셨고, 말씀하셨던 것, 곧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에 대한 말씀의 성취를 곧바로 마귀에게 확인시켜 주었다. 그리고 이 사례 속에는 그리스도가 모든 원수를 자기 발 아래 두도록 되어 있는 중대한 역사에 대한 성취가 예시되어 있다.

 

이후에 우리는 아담과 하와의 자녀 가운데 하나, 곧 의인 아벨에게서 구속의 성취의 또다른 사례를 보게 된다. 성경은 아벨을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영혼이 천국으로 올라간 최초의 인물로 본다. 우리는 성경에서 아벨의 죽음을 통해 구속받은 인물의 첫 번째 죽음을 발견한다. 만일 아벨이 첫 번째 인물이라면, 아벨의 경우는 그리스도의 구속이 사람들의 영혼 속에서 회심과 칭의의 역사가 처음으로 시작된 사례가 되기 때문에 우리는 영화 역시 그에게서 처음으로 시작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 조나단 에드워즈, 『구속사』(전집 3권), 설교 2, pp 170-1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