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존 칼빈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출20:5)/ 존 칼빈

새벽지기1 2016. 5. 15. 07:48


무죄한 자들에게 다른 사람들의 과실에 대해서 벌을 내린다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와 공평성에도 어긋나는 일이라는 사실은 제쳐 두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아버지의 죄를 아들에게 강제로 지게 하지 않으실 것임을 친히 선언하고 계신다(겔18:20). 그러나 조상들의 죄에 대한 형벌이 후대에까지 미친다는 선언을 거듭 접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모세는 하나님을 향하여 자주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여호와는 아버지의 죄악을 자식에게 갚아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이다”(민14:18, 출34:6-7). 예레미야도 “주는 은혜를 천만인에게 베푸시며 아버지의 죄악을 그 후손의 품에 갚으시오니”(렘32:18)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사야는 히스기야에게, 그가 저지른 범죄로 인하여 그의 자손들이 나라를 빼앗기고 포로로 끌려갈 것이라고 선포하고 있다(사39:6-7). 아브라함에게 해를 입힌 것 때문에 바로와 아비멜렉의 가문이 재앙을 받기도 했다(창12:17,20:3,18).

 

이에 대한 바른 해석은, 여호와의 의로우신 저주가 너무 위중하여 악인의 머리뿐 아니라 그의 가문 전체에 임하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저주가 임하는 곳에서는, 그 아버지가 하나님의 영을 빼앗겨 지극히 부끄러운 생활을 하는 것이나, 아니면 그 아들이 그 아버지의 죄로 인하여 주께로부터 버림을 받아 그와 똑같이 멸망의 길을 걷는 것 이외에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 가증스러운 사람들의 저주받은 자식들인 손지와 증손자도 똑같은 길을 걷지 않겠는가?

 

그런 보응이 과연 하나님의 공의에 부합되지 않는 것인지를 살펴보자. 하나님께서 그의 은혜 속에 있을 가치가 없다고 여기시는 사람들의 본성 전체가 정죄 가운데 있다면, 그들에게는 멸망이 예비되어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의 불의 때문에 멸망하는 것이지, 하나님 편에서의 부당한 미움 때문에 멸망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악인과 불경스러운 자들이 자기들의 범죄 때문에 형벌을 받아 여러 세대 동안 그 가문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한 것이므로, 이처럼 완전히 공의로운 보응에 대해서 과연 누가 하나님을 비난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반면에 여호와께서는 아버지의 죄에 대한 형벌이 자식에게 전가되지 않을 것임을 선포하신다(겔18:20). 여기서 논의되고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보아야 한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오랜 동안 끈질기게 온갖 불행을 당하는 동안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그의 아들의 이가 시다”(겔18:20)는 속담을 둘러대기 시작했다. 자기들은 의롭고 무죄한데 조상들이 죄를 범하여 그 때문에 자기들이 억울하게 형벌을 당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선지자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선언한다. 그들이 자기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서 징벌을 받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악한 아버지가 받을 형벌을 의로운 아들에게 지우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에도 어긋나며, 여기 나타나 있는 위협도 그런 것을 시사하는 것이 아니다. 본문이 말씀하는 형벌이, 하나님께서 그의 은혜를, 그의 진리의 빛과 기타 구원에 이르게 하는 도움을, 사악한 자들의 자손에게서 물리시는 데에서  그 자손들이 하나님께 버림받아 어두운 상태에서 그 조상들의 발자취를 그대로 따라가는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그들이 그 조상들의 악행들 때문에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또한 세상의 온갖 비참한 일들을 당하고 결국 마지막에 영원한 멸망에 빠지게 된다는 사실은, 다른 사람의 죄가 아니라 자기들 자신의 사악함에 대한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으로 말미암아 가해지는 형벌인 것이다.

 

- 존 칼빈, 『기독교 강요』, 상권(크리스찬다이제스트), pp 472-4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