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존 오웬

존 오웬 성령론[5]|

새벽지기1 2016. 5. 8. 07:36


Ⅳ. 그리스도인의 삶과 성화론

오웬은 그의 『성령론』제4부에서 “성화1)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사람은 중생(regeneration)하고, 회심(conversion)을 한다. 이는 성령의 새로운 창조에 있어서 두 번째 부분(part)라고 할 수 있다.2) 성화의 주체이신 하나님은 ‘평강의 하나님’(the God of peace)은 우리의 본성과 인격을 성화시키셔서 하나님과 평강한 관계를 계속 유지하도록 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전 본성(whole nature)을 성화시키셔서 완전한 영과 완전한 혼과 완전한 몸을 가지게 하시고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하나님의 평강 안에서 흠 없이 우리를 완전하게 보존하신다는 말이다.3) 성화는 그의 신학적 학문의 탐구와 지식은 다른 청교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위한 실제적인 지식이었다. 그는 칼빈과 마찬가지로 이 땅을 사는 그리스도인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은 성화라고 보았다. 그는 말하기를 “성화는 신자들의 영혼에 대한 하나님의 성령의 직접적인 역사로 그들의 본성을 죄의 오염(汚染)과 부정(不淨)으로부터 정결케 하고, 그 안에 하나님의 형상을 새롭게 함으로 그들이 은혜의 신령하고 습관적인 원리를 따라 하나님께 순종을 바칠 수 있게 하는 것이다.”고 했다. 그러므로 성화는 죄의 오염으로부터 죄인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다.4)

  그러나 성화는 그리스도인의 실존에 있어서 포괄적인 주제인 ‘하나님과의 교통’의 한 단면에 불과하다. 사실 하나님과의 교통 사상은 청교도 신학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주제는 다른 모든 신학적 주제들과 연결되는 중심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인간의 문제에 방대하고 치밀한 관심을 가졌던 것은 모두 하나님과의 교통을 위해서였으며, 성화는 이 목적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었다.


1. 신자 안에 ‘내재하는 죄'                                                         

  오웬은 여전히 죄가 신자 안에서도 지배하고 싶어 한다고 말한다. 바로 여기서 그의 성화론이 출발한다. 죄는 결코 신자를 지배할 수 없지만, 신자가 죄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한 것은 아니다. 즉 죄의 지배에 대해서는 자유하지만, 죄의 지배하려는 속성에 대해서는 자유롭지 않다. 이 속성과 신자는 싸워야 한다. 신자는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은혜 아래 사는 존재이다. 그리하여 신자의 마음은 전쟁터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복음은 죄를 이길 수 있는 계속적인 은혜의 공급으로 생명과 능력을 준다.

성경은 내재하는 죄가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이미 그 지배권을 잃었음을 선포한다.5) 간단히 말해서 신자는 은혜의 지배아래 있다. 그리고 불신자는 죄의 지배 아래 있다. 오웬의 성화 교리는 “한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순간 죄의 지배는 무너진다.”는 토대 위에 세워진다. 그의 성화 교리에 있어서, 죄와 은혜라는 이 두 가지 지배력 안에 모든 인류를 가둔다. 모든 인류는 죄와 은혜라는 이 두 가지 중 어느 하나에 속한다. 둘 다 속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여전히 신자 안에 내재하는 죄는 잔존하여 영향력을 발휘한다. 이 죄는 신자 안에서 신자를 지배할 법적인 근거를 잃었으나, 그것은 여전히 살아서 그 힘과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것은 계획을 세우고, 신자를 유혹하되, 열렬히, 광기(狂氣)를 가지고 신자로 하여금 죄를 짓도록 조장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지배할 수 없는 신자를 지배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의 논문 ‘죄와 은혜의 지배’는 바로 내재하는 죄의 속성에 관하여 논하고 있다. 내재하는 죄는 계획하고, 충동하여 자신의 계획을 이루어 나가는 인격으로 의인화되어 묘사되고 있으며, 이것은 로마서를 기술한 바울의 관점에서 일치한다.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가 들어오기 전 불신자를 지배하던 죄의 지배아래 있었으나, 그가 그리스도의 구속의 공로를 힘입는 순간 죄의 지배는 완전히 무너졌다. 그 내면의 원리 또한 하나님께 순종하고자 하는 은혜로운 틀(frame)이 구축되었다. 그리하여 신자는 죄를 범할 때, 불신자와 다르게 그 것으로 인하여 고통스러워한다. 그러나 죄의 영향력과 힘은 여전히 신자에게 존재한다. 은혜와 죄 사이에는 항상 싸움이 있다. 은혜는 우리 영혼을 살찌게 하고 건강을 증진시키고 필요한 것이지만, 죄는 우리 영혼을 약화시키고 부패케 한다.6)

  오웬은 바울이 설명한 롬7:21을 근거로 내재하는 죄를 “한 법”이라고 하였다. 신자가 은혜의 지배아래 있으면서도 또한 동시에 신자 안에 잔존하는 죄의 세력, 곧 그것의 힘을 축소시키지도 않는다.7) 그것은 인간 안에 계속 존재해 온 어떤 내재적이고 습관적인 원리이다. 오웬도 바울처럼 신자 안에 내재하는 죄, 곧  신자의 적인 죄를 인격과 같이 의인화하고 있다. 이 내재하는 죄의 본질은 ‘거룩한 하나님을 향한 적대감“이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반감(反感)이다. 싫어함(aversion) 또는 혐오, 진절머리 내는 것,  증오(憎惡) 마음이다. 이것은 반드시 신자가 자신 안에서 역사(役事)하지 못하도록 죽여야 할 원수이다. 왜냐하면 신자 안에 내재하는 그 죄는 반드신 신자를 하나님으로부터 떠나도록 파멸하도록 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오웬에 의하면, “죄는 자신의 지배 자체를 빼앗겼을 뿐, 그 속성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죄의 파렴치한 속성들 중, 하나는 죄는 항상 악(惡)을 지향하되, 그것도 최대치를 갈망한다는 것이다. 죄의 최종적인 목표는 인간을 지배하는 것이다. 아무리 작게 남아 있더라도, 죄가 존재하는 곳에서는 죄의 속성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지배권을 향한 그것의 열렬함은 죄의 속성으로써, 죄는 틈만 나면 그의 통치구조(frame)를 재건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죄를 남겨두면 내가 죽는 것이고, 죄를 죽이면 내가 사는 것이다.8)

  죄가 계속해서 약화되지 않고서는 죄는 죽지 않는다. 우리는 죄의 힘을 파악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계속해서 죄의 요소와 죄의 활동을 주시하여야 한다. 이것이 신자의 의무이고, 이것이 우리의 소명이다. 우리는 몸의 행실을 죽여야 한다. 우리의 육체를 죽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이것을 할 수 없다. 이것은 오직 성령 안에서(in) 또는 성령에 의해서(by)서 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의 마음속에 있는 죄의 세력과 치세는 성령에 의해서 약화되고 손상을 받아 마침내는 멸망 받고 만다.

  (1)성령께서는 우리들의 마음속에 있는 좋지 않은 습관적 요소, 성질, 행동 등을 뽑아 버리시고, 정반대의 마음을 주시고 좋은 습관, 요소, 행동 등을 심어 주신다. 육체의 욕심을 갖지 않는 것이 죄를 죽이는 일이다. 그리고 성령을 따라 행하는 것이 죄를 죽이는 것이다.

  (2)성령께서는 죄를 죽이는 사역을 그의 은혜를 통하여 실제적으로 공급하고 지원하신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도우시는 힘으로 실천적으로 죄를 죽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의 도와주시는 은혜를 따라 부지런히 주님의 은혜를 갈망해야 한다. 그럴 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들에게 우리들이 갈망하는 것을 주신다.

  (3)우리를 지도하시고 도와주시는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죄를 박멸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고, 죄를 죽이는 사명을 또한 주셨다. 일반적인 훈련을 통해서 감당하는 우리의 의무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러나 죄를 죽이기 위해서 용의주도하게 계획된 속에서(in) 또는 계회에 의해서(by) 각각의 독특한 경우에 알맞게 우리는 대처하고 적용해야 한다.9)

  성령께서는 이 사역의 목적을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우리들 가운데 성취하신다. 오직 그리스도의 죽음만이 이러한 죄 죽임의 의무를 성취케 한다. 성령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고, 교제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죽음에 연합하고, 일치되게 하심으로 그리스도의 죽음의 효과가 우리에게 유효하여 죄 죽임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10)  

 

2. 은혜 언약의 핵심 : 그리스도와의 연합(Union with Christ)                              

오웬의 언약신학11)에 있어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그리스도와의 교제의 기초가 된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대한 오웬의 생각은 엄격하게 칼빈주의적이며, 동시에 청교도적인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가르침은 하나님과의 언약적 관계라는 틀 속에서 구성되었다. 일반적으로 언약적 관계가 시작되면서 인간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들어간다. 이제 이 언약은 진지한 고려 가운데 우리에게 임하는 것이다. 즉 우리가 아브라함의 씨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오직 한 씨이신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언약을 받게 된다. 바로 그리스도를 향해 언약의 약속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이 연합은 성령을 통해서이다. 이 연합은 신자에게 모든 유익을 가져오는 통로이다. 다른 청교들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오웬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와 교통을 위한 기초이다. 그것은 그분의 인성에 성도가 동참함으로써 얻는 구속의 효과이며, 나머지 하나는 바로 성화이다.

즉 오웬은 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칭의와 성화를 밀접하게 연관시키면서 동시에 구별한다. 그러므로 오웬에 있어서, 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신자의 구속과 성화를 이해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요소이다.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와 그분의 백성과의 연합은 그리스도께서 인성을 취하신 성육신 사건 속에서 발생한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그리스도께서 성육신으로 인성을 취하셨기 때문이다. 은혜언약 안에 거하는 신자는 그리스도와 연합을 통해 그리스도의 구속의 모든 효과가 그에게 붙어있는 신자에게 전달되고, 그리스도께 있는 하나님의 형상(거룩함과 은혜)도 신자의 것이 되는 것이다.



3. 성화의 목표 :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                                              

우리의 전 본성(whole nature)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형상으로 지은 아담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주셨다.12) 그는 초자연적인 생명(Supernatural Life)의 소유자로 창조되었고, 하나님을 향해(to God) 살아드리도록 창조되었다.13) 그러나 죄가 들어옴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형상은 손상을 입었고, 그리고 그것을 잃어버렸다. 이것은 우리 영혼의 어떠한 하나의 능력이(one power) 소멸된 것이 아니고, 한 부분(part)이 떨어져 나간 것이 아니며, 기능이 떨어져 나간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전본성(whole nature)을 잃어버린 것이다. 따라서 성경은 우리의 본성이 전적으로 타락했다고 말한다.14) 아담의 범죄로 하나님의 형상은 말할 수 없는 손상을 입게 되어 다시금 하나님께로 돌아갈 길이 전혀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제 외부적인 도움이 없다면 인간은 구원받을 수 없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복음을 주셨다. 세상에 아들을 보내시고, 아들의 공로를 죄인들에게 덕 입게 하셔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셨다. 이러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연합으로 말미암는 중생과 성화의 사역으로 하나님의 형상이 우리 안에서 회복되게 하셨다. 오웬에게 있어서 성화의 본질은 깨어진 하나님의 형상을 복원하는 것, 곧 재창조의 사역이다. 그것은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회복이다.



4. 성화의 과정                                                                  

  오웬은 “성령론”에서 성화를 씨에 비유한다. 오웬에게 있어서 중생은 성령 하나님의 사역인 반면에 성화는 신적인 사역인 동시에 여기에 순종하는 인간적인 반응을 요하는 인간적인 사역이라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성화의 주체는 성령이시오, 인간은 그분에게 피조물로서 마땅히 드려야할 순종을 드린다는 의미에서 인간적인 사역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이 인간이 하나님과 협력하여 무엇을 이루어 간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성화는 하나님의 영의 직접적인 사역이다(Sanctification is an immediate work the Spirit of God)’15)라고 그는 성화의 주체는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인간은 피조물로서 창조주 하나님께 마땅히 순종해야 하며, 성화는 그 순종의 과정을 통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이끄시는 하나님의 주권과 그의 구원하심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은 인간의 책임이다. 인간의 순종이 결코 인간의 공로가 될 수 없다. 이것마저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은혜가 아니고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순종이 결코 공로가 될 수 없다. 인간이 하나님의 이끄심에 순종으로 반응하는 선한 행위는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점이 개혁주의 성화론의 놀라운 신비이다.

 


5. 신자의 의무 : ‘죄 죽인다’는 의미                                                

  성화는 계속적인 의무 수행을 필요로 한다. 의무란 원래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피조물로서 또한 성도들에게는 새로운 피조물로서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책임 전체를 말한다. 사람의 의무와 성도의 의무는 동일하다. 그러나 이러한 의무를 순종할 수 있는 존재는 오직 성도뿐이다. 성경에 계시되어 있는 이 의무는 성도의 새로운 본성과 일치하며, 성령의 도움 없이는 실천될 수 없는 것으로서, 반드시 믿음으로만 시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복음은 신분의 자유와 내적 자유를 동시에 준다. 이로써 영혼 위에 역사하던 죄의 권세나 영혼 안에 역사하는 죄의 권세는 모두 파괴된다. 내재하는 죄는 완전주의자들의 주장과 같이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영광의 단계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이것이 성경과 오웬이 동시에 주장하는 바이다. 내재하는 죄가 여전히 한 법으로서 그 내부에서 역사하고 있는 신자의 실존이 그에게 죄 죽임(Mortification)이라는 중대한 의무를 요구한다. 그러나 동시에 있지 말아야 할 것은 복음이 이미 신자에게 죄의 지배를 파과하고 자유를 주었다는 사실이며, 이 사실이 신자로 하여금 그 의무를 자유롭고 담대하게 이행하게 하는 촉진제 역할을 한다.

오웬은 우리에게 신자가 어떻게 성화를 위한 삶의 지침으로 ‘죄 죽이기’를 말한다. 그는 롬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에서 이 교리를 이끌어 낸다. 그리고 신자는 일평생 죄를 죽이는 것을 자신의 일로 삼아한다고 말한다.

오웬이 죄를 ‘죽인다’는 말은 완전히 ‘제거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안에서 죄가 역사하지 못하도록 그 힘을 약화시킴으로써 죄의 세력이 신자에게 영향을 주지 못하도록 죄를 억제하는 것을 말한다.

죄 죽임의 필요성에 대해 오웬은 매우 강하게 말하고 있다. “이 죄 죽임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은혜는 고갈되고 욕망은 충만해지며 마음의 구조는 점점 더 악해진다. 주님은 이런 상태가 어떤 절망적이고도 두려운 일들을 일으키는지 잘 알고 계신다. 죄 죽임을 무시함으로써, 죄가 거대한 승리를 거둔 곳마다 영혼의 틀은 파괴된다.(시31:10) 그리고 인간을 약하게 하고 아프게 하며 죽게 만든다. 그리하여 결국 그들은 고개 들 수도 없게 될 것이다. 연약한 피조물이 고난과 실패와 상처 속에서 그들 자신을 일으켜 활발한 대적을 할 수 없을 때, 그들은 죄의 속임으로 인한 굳은 마음 이외에는 어떤 것도 기대할 수 없을 것이고 그 결과 그들의 영혼은 피 흘리며 죽어갈 것이다. 태만(怠慢)에서 오는 이러한 일은 정말 슬픈 일이다.

신자는 죄의 정체와 그것의 전략을 파악하고, 죄가 신자가 마땅히 수행해야할 영적이고, 하나님 앞에서의 삶을 살기위한 노력들을 무너뜨리려 침해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죄가 신자 안에서 역사하지 못하고 죽어있는 증거이다. 이러한 일은 오직 ‘성령’의 사역이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믿음과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을 통해서 죄를 죽이는 일이 가능하도록 신자 안에 역사하신다. 그러므로 성령의 일하심에 신자의 순종이 뒤따라야 한다. 신자는 총체적인 순종 곧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방편들 - 기도, 말씀, 묵상, 하나님과의 교제(사귐) 등 -을 부지런히 활용하여 이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피 흘리기까지 자신과 싸워야 한다. 이 싸움에서 승리할 때 비로소 우리는 더욱 그리스도와 연합을 이루어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통’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영광을 받으신다.

 


'좋은 말씀 > 존 오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존 오웬의 성령론(7)  (0) 2016.05.10
존 오웬의 성령론[6]  (0) 2016.05.09
존 오웬의 성령론(4)  (0) 2016.05.07
존 오웬의 성령론(3)|  (0) 2016.05.05
존 오웬의 성령론(2)  (0) 2016.0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