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프란시스 쉐퍼

프란시스 쉐퍼 들여다 보기(4) '라브리 사역' /신동식

새벽지기1 2016. 4. 21. 21:14


제2장 쉐퍼를 향한 하나님의 두 번째 부르심 - 라브리 사역

제1절 영적인 쉼터 - 건초더미속에서의 부르심

쉐퍼의 남은 40여 년간의 사역은 영적 쉼터라고 불리우는 라브리 사역에 있다. 쉐퍼는 세인트 루이스에서 목회를 하던 1947년에 미국 기독교 교회협의회와 장로교 해외선교회 독립협회를 위해서 유럽으로 첫 여행을 하게되었다. 쉐퍼는 3개월 동안의 여행을 통하여 생애의 전환점을 가지게 되었다. ·쉐퍼의 가족은 이 여행의 결과로 유럽에 있을 것인가, 떠날것인가 두 방향으로의 갈등을 겪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를 위하여 기도하였고 결국 그들은 모든 안정된 곳을 버리고 영적 전쟁터인 유럽에 남기로 한 것이다.]에디스 쉐퍼,라브리 박경옥,박하영 역[서울:호도애 1994]pp.37

쉐퍼는 유럽의 모습이 모든 것이 갈기갈기 찟어진 채로 나뒹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유럽은 신앙과 질서 있는 사고를 가치 없이 만들어 버리는 철학적이고 신학적인 흐름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리고 종교의 자유라는 미명아래 절대적 진리는 사라지고 오로지 상대주의적 사고가 편만해 있는 유럽은 바로 쉐퍼가 있어야 할 전쟁터였다.

쉐퍼는 유럽으로의 여행을 통하여 많은 동역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 중에는 에버릿 쿠퍼박사와 그의 평생의 동역자였던 화란의 미술사가 한스 로크마크였다. 이들의 만남은 쉐퍼의 사역에 크나큰 기둥들이었다. 쉐퍼는 분명한 성경적 입장으로 인하여 많은 곳으로부터 강연요청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사역가운데 그에게도 위기가 닥쳐온 것이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신앙에 대한 반성이었다. 쉐퍼의 이러한 영적 갈등은 쉐퍼의 말에서 볼 수 있듯이 매우 심각하였다.

“ 1951년과1952년에 나는 나의 생애에 있어서 영적인 위기에 봉착했었다. 내가 불가지론에서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이미 여러 해 전이었다. 그 후 나는 미국에서 10년을 목사로 봉직했으며, 또 그후에는 나의 아내 에디스와 수년간 유럽에서 봉사해 왔다. 이 때에 나는 역사적 기독교의 위치와 가시적 교회의 순결성을 변호하고 나서야한다는 강한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런데 점차로 나에게 문제가 닥쳐왔다. 그것은 실제에 대한 문제였다. 이것은 양면을 지니고 있다.

첫째로, 내가 보기에, 정통주의 위치를 고수하고 있노라는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성경이 그토록 명백하게 말하고 있는 기독교의 필연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는 여러 사건들 속에 있어야 할 사실상의 핵심적인 실재를 별로 찾아 볼 수가 없었더라는 점이다.

둘째로, 내 자신의 실재도 내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던 초창기보다도 더 약화되어 있는 모습으로 점점 나타나더라는 점이다. 나는 솔직히 말해서 다시 과거로 돌아가서 내 자신의 전반적인 위치를 재고해 보아야 하겠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우리 내외는 그 때 참페리에 살고 있었다. 나는 내 아내 에디스에게 솔직히 내가 다시 온전해 과거로 되돌아가서 불가지론에 이르러 문제 전반을 다시 한번 검토해야 하겠노라고 말했다. 이 때야말로 나의 아내에게도 진정 어려운 때였을 것으로 본다. 그 당시 내 아내는 나를 위해 무척 기도도 많이 했었음을 나는 알고 있다. “]프랜시스 쉐퍼,“진정한 영적 생활” , 권혁봉역 [서울 :생명의 말씀사 1988]pp.5-6.

쉐퍼는 날씨가 청명한 때는 산 속을 거닐고 비가 오는 때에는 낡은 오두막집 건초더미사이로 거닐면서 자신이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되었는가를 생각하고,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기도하고 거닐었다. 이러한 쉐퍼의 영적 갈등은 그로 하여금 새로운 존재로 만들게 하였던 것이다.

“내가 그리스도인이 된 이유를 재고하는 가운데서 나는 또 다시 발견한 사실이 있으니, 무한하신 인격적인 하나님이 엄존하시는 기독교야말로 참되다는 것을 알만한 전적으로 충분한 이유가 있음을 발견했던 것이다. 좀더 나아가서 내 생애 가운데 심오한 차이점을 일으키는 기타 어떤 사실도 알게 되었다. 나는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실재에 대해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고찰해 보았다.
그 결과 나는 다음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 받은 교훈이 많이 있지만, 우리들의 현재의 삶을 위한 그리스도의 완성하신 사역의 의미에 관해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지는 많이 들어보지 아니 했다는 것이 문제점이었다는 점이다.
문제는 여기서 생긴 것이었다. 점점 태양은 밝히 떠오르고 노래가 흘러 나왔다.“] ibid.,pp.6

그러나 바로 이러한 쉐퍼의 영적 갈등과 회복은 진정한 라브리 사역으로의 하나님의 부르심이었다. 쉐퍼의 영적 갈등이 없었다면 라브리는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이 라브리의 진정한 기초의 과거와 현재이다. 역사적 기독교의 해답을 가르치고 정직한 질문에 대해 정직한 대답을 제시하는 일은 실로 중차대한 일이다. 그러나 실재에 이르는 것은 노력을 통해서이다. 이런 노력을 통한 실재가 없었더라면 라브리와 같은 기민한 활동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ibid., pp.6-7


라브리에서의 그의 사역은 절대적 진리를 위한 투쟁이었다. 라브리에는 국적과 연령, 배경과 관심이 전혀 다른 사람들이 와서 진리에 대하여 토론하고 진리를 찾고 있다.ibid.,pp.18
라브리의 사역의 목적은 분명하였다.

“라브리는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삶과 일속에서 증거 한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보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그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기도를 기초로 하여 살기로 한 것이다.“]ibid.,pp.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