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김형익목사

호세아1장 '납득하기 어려운 명령' /김형익목사

새벽지기1 2016. 4. 14. 07:21


1장 납득하기 어려운 명령

1. 호세아 선지자의 활동시기는 8세기 후반이었다. 남 왕국 유다는 웃시야(주전 767~739), 요담(주전 739-731), 아하스(주전 731~715), 그리고 히스기야(주전 715~686)가 이어 왕이 된 시대이고 북 왕국 이스라엘은 여로보암 2세(주전 793~753)의 시대로부터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 호세아(주전 732~722) 시대 즉 북왕국 이스라엘의 멸망 때까지 예언을 했을 것이다(1) 히스기야 때도 언급한 것으로 보아, 그는 이스라엘 멸망 후에도 잠시 활동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별히 호세아 선지자가 이스라엘의 선지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유다 왕들의 이름을 먼저 기록하고 있는 것은 그도 다른 선지자들과 마찬가지로 다윗 왕의 계보의 정통성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 이후의 마지막 왕들, 스가랴, 살룸, 므나헴, 브가히야, 베가, 호세아의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것은 이들이 반역에 의해서 왕위를 찬탈하여 혼란과 멸망을 초래한 정통성이 없는 왕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2. 호세아 선지자는 특별하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첫 번째 말씀이 음란한 아내를 취해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는 것이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2). 여기서 ‘음란한’이란 뜻은 마음을 가리키기 보다는 행동을 가리키는 단어로서 음란한 아내라고 할 때 이것은 창녀를 아내로 삼으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호세아 선지자가 아내로 삼아야 하는 여인의 이름이 디블라임의 딸 고멜이라고 언급된 것을 볼 때, 이 명령은 상징이 아니라 실제 명령이었으며 호세아는 실제로 고멜이라고 이름하는 여인과 결혼을 했을 것이다. 이 명령은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명령과 함께, 도덕 기준에 맞지 않는 불합리한 명령으로 여겨진다. 호세아 선지자가 음란한 아내를 취하는 것이 불법적인 일이라면,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부정하고 음란한 이스라엘을 사랑하여 결혼하신다는 개념은(2:16,19,20) 더더욱 불법적인 일일 것이다. 하지만 어떤 학자들은 호세아가 처음에는 순결한 여인인 고멜과 결혼했지만, 이 여인이 결혼 후에 음란하고 부정한 행위들을 저지른 것이라고 이해하기도 한다. 이것도 받아들이는데 문제가 없는 해석이다.

3. 호세아 선지자는 고멜과 결혼하여 세 자녀를 낳았다(3~11). 첫째는 아들 이스르엘인데 이 이름은 축복의 이름인 이스라엘(‘하나님과 더불어 싸워 이겼다’는 의미)과 발음이 비슷하지만 그 의미는 정반대의 저주의 이름으로 ‘하나님께서 흩으신다’는 뜻이다. 이스르엘은 아합의 집안이 예후에 의해서 멸망한 지명인데, 예후가 아합의 집을 멸하고 바알 신당을 없앨 때(왕하 10:19~24) 하나님께서 그를 칭찬하여 그가 4대를 이어 왕위를 차지할 것이라고 하셨다(왕하 10:30). 그래서 호세아의 첫 아들의 이름을 통해서 예후 왕가가 4대만에 망하게 될 것을 보여주는 이름이다.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을 것이라는 예언이다(4). 그 4대는 여로보암 2세의 아들인 스가랴 때였다. 이후 호세아 선지자는 고멜을 통하여 둘째로 딸을 낳게 되었는데 그 이름은 로루하마라 하라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6). ‘긍휼을 받지 못한다’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패역한 이스라엘을 용서하지 않으시고 멸하시겠다는 의미다. 그러나 남 왕국 유다는 하나님의 긍휼을 입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7). 결국 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멸망당하여 역사 속에 사라져 버렸지만, 유다는 바벨론에게 멸망 당한 후 70년만에 다시 고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러나 이 구원은 결코 칼과 활과 전쟁, 마병이나 말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구원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셋째로 낳은 아들의 이름은 로암미라 하라고 하셨다(9). ‘내 백성이 아니’라는 뜻이다. 호세아의 세 자녀의 이름을 순서대로 생각해보라. 처음에는 하나님이 심판하시겠다는 의미의 이스르엘, 둘째는 하나님이 긍휼을 거두어가시겠다는 로루하마, 세째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방인과 똑같이 취급하시겠다는 로암미, 결국 호세아의 메시지는 점진적으로 강도를 더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4. 말씀이 여기서 끝나지 않는 것이 은혜다. 하나님은 이제 호세아 선지자에게 회복의 말씀을 주신다(1:10~2:1). 이스르엘은 분명히 저주의 땅이고 저주의 이름이지만, 이제 이스르엘은 또 하나의 새로운 의미로 드러난다. 그것은 ‘하나님이 심으신다’는 의미다. 이스르엘의 날은 위대한 날이 될 것이다(11). 하나님이 새롭게 그들을 심으실 것이다(2:23). 또 로암미는 암미 곧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고, 로루하마는 루하마가 되어 하나님의 긍휼을 받게 될 것이다(2:1). 그러나 이런 일은 그냥 일어나지 않는다. 애통하는 회개가 요구되는 일이다. 이 회개가 이루어지기 위해서 하나님은 그들을 이제 징계하실 것이다.

5. 개인적으로 음란한 아내를 취해야 하고 자녀들을 낳아서 축복된 이름을 지어주지 못하는 호세아 선지자의 마음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호세아가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선포하기 위해서는 그가 하나님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것이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만은 아니다. 호세아는 음란한 창녀 같은 백성을 사랑하여 친히 그들의 남편이 되어 주신 하나님의 이야기다. 호세아의 이름은 여호수아, 예수의 이름과 동일한 이름이다. 예수님께서 구주로 오셔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고 그들의 신랑이 되실 것을 그의 삶과 메시지는 보여준다. 예수님은 친히 음란한 아내를 맞아 그를 사랑하셨다. 이것이 우리의 구원의 이야기다. 호세아의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간접적인 경험을 가지도록 인도하신다. 이것이 호세아서다. 호세아서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는지 조금이라도 더 알게 해주시기를 구하자.

6. “하나님 아버지, 저희 불순종과 패역함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사랑과 은혜를 베푸셔서 오늘 이 자리까지 오게 하신 은혜를 인하여 감사합니다. 그러나 그 은혜와 그 사랑을 저희가 아직도 너무나 조금 밖에는 알지 못합니다. 호세아서를 통하여 저희로 그 은혜, 그 사랑을 조금이라도 더 깨달아 아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