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존 칼빈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요1:14) / 존 칼빈

새벽지기1 2016. 4. 10. 09:14


그리스도는 우리처럼 육신을 입고 공공연히 나타내셨다. 요한은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본성을 입으셨다는 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비를 간략하게 다루기는 했지만, 경탄을 금치 못할 정도로 명료하다. 이 구절은 하나님의 본질 안에 계신 하나의 참 본질을 가리키고 있다.

 

육신이라는 단어는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셨다고 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요한이 말하고자 아는 의미를 전달한다. 요한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위해 그 존귀한 하늘 영광을 버리시고 얼마나 낮고 비천한 상태로 내려오셨는가 하는 것이다.

 

성경은 인간을 낮춰 말할 때, ‘육신’(flesh)이라고 부른다. 하나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가지신 영적인 영광과 우리 육신의 지독한 추함 사이의 간격은 대단히 깊고 멀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아들은 자신을 지극히 낮추셔서 인간의 비참함을 표현하는 바로 그 육신을 친히 취하신 것이다.

 

여기서 ‘육신’은 (바울이 즐겨 사용하는) 타락한 본성을 가리키기 위함이 아니라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진 인간을 가리키려고 사용되었다. 즉 인간의 연약하고 덧없는 본성을 경멸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모든 육체는 풀이요’(사40:6)라는 구절이나 이와 비슷한 구절들이 이러한 육신의 특성을 잘 설명해준다.

 

하지만 여기에서 동시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이 단어가 수사학적인 제유법(提喩法, 하나의 명칭으로 전체 또는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을 나타내는 표현법)으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언급하는 ‘육신’이라는 말 속에 ‘전인(全人)’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본문의 의미는 분명하다. 모든 시대 이전에 성부 하나님에게서 나시고 그 하나님과 함께 거하신 말씀이 사람이 되신 것이다. 여기에 믿음의 중요한 두 요소가 있다.

 

첫째, 그리스도께는 두 본성(인성과 신성)이 하나의 인격 안에 연합되어 있어서 동일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면서 동시에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둘째, 두 본성이 그분의 인격 안에 연합되어 있다고 해서 그 각각의 본성이 뚜렷하지 않은 상태로 있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서, 신성은 신성에 적합한 모든 것을 보유하고 있고 마찬가지로 인성 또한 인성에 속하는 것을 모두 갖추고 그분 안에 존재한다.

 

그러므로 사탄은 이단들을 동원하여 이런 저런 어리석은 방법으로 건전한 신학을 전복시키려 할 때 항상 다음 두 가지 오류 중 어느 하나를 억지로 끌어들였다.

 

그중 하나는,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동시에 사람의 아들인 방식이 아주 혼란스러워서 그 신성이 온전하지도 않고 그 본성 또한 순전한 인간 본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의 오류는, 그리스도가 이중인격을 가지고 두 개의 구별된 사람으로 존재하기 위해 인간의 육신을 옷 입었다고 하는 설명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요한의 주장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인격의 통일성을 분명하게 추론할 수 있다. 지금 인간이신 그분은, 과거에 언제나 하나님으로 계셨던 분이 아닌 다른 어떤 분으로 이해될 수가 없다. 사람이 되셨다고 언급된 분은 바로 그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건대, 요한이 ‘말씀’이라는 명칭을 인간 그리스도에게 명백하게 붙이고 있으므로, 그리스도께서 인간이 되셨을 때 그분은 이전에 존재하시던 것을 멈추신 것이 아니며, 육신이 되신 하나님의 영원한 본질에서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한마디로 말해서, 하나님의 아들은 사람이 되셨는데, 여전히 시간적인 시작이 없는 영원한 말씀으로 그렇게 되신 것이다.

 

- 칼빈, 『요한복음 주석』, pp 43-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