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이 이 잔(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내게서 옮겨 달라고 기도하신 것은 사랑하는 하나님아버지로부터 버림받기를 원치 않는 아들의 간절한 소원을 아뢴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영원 전부터 하나이셨던 주님이 아버지의 사랑으로부터 끊어지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며 할 수만 있으면 피하고 싶었던 것은 지극히 당연한 아들의 소원이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을 구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진노의 잔을 마시지 않고도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가능성이 아버지의 뜻 안에 포함되었는지를 묻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만일 할 만하시거든”이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버지의 뜻이 아닐 경우 아버지의 뜻을 따르겠다는 단호한 순종의 의지를 보이셨습니다.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여기서 하나님이 자신을 버리고 저주하심에도 그런 하나님에 대한 주님의 변치 않는 절대적인 신뢰와 사랑과 순종의 클라이맥스가 드러납니다. 히브리서에 기록된 대로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은 피땀 흘리며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 영혼의 깊은 고뇌 속에서 아버지의 뜻에 순종함을 배우셨습니다(히5:7-9).
주님이 그토록 두려워하신 진노의 잔을 마신 뒤에는 무한한 영광의 잔이 기다리고 있다는 소망으로 그 두려움과 슬픔을 극복하신 것입니다. 자신이 진노의 잔을 마심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잔을 마시게 될 것을 내다보는 즐거움으로 고난을 감수하신 것입니다.
겟세마네의 고뇌는 단지 아들만의 고민과 슬픔이 아니었습니다. 본문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아들의 고뇌 뒤에는 하나님아버지의 말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이 숨어있습니다. 주님이 그토록 피하고 싶으셨던 것 못지않게 하나님아버지도 영원 전부터 사랑하는 아들을 저주하고 버리시는 것을 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도 다른 길이 없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도 우리 죄를 사하고 우리를 구원하실 방법이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십자가에서 저주하고 버리시는 것 외에는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에 대해 진노하시고 죄를 처벌하는 거룩한 공의의 하나님이시기에, 우리 죄에 대한 당신의 진노를 우리 대신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에게 쏟아 부어 그를 참혹하게 죽이셔야만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겟세마네에서 사랑하는 아들의 애절한 소원과 심한 통곡까지 박절 맞게 외면해야만 하는 아버지의 말할 수 없이 괴로운 심정을 헤아려보아야 합니다. 아들에게 그같이 비정한 아버지가 되셨기에 우리 죄인에게는 한없이 자애로운 아빠 하나님이 되실 수 있었습니다.
십자가가 우리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유일한 방법이며 지혜이고 능력입니다. 이 십자가외에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으며 영생과 천국을 누리는 다른 길은 전혀 없습니다.
주님이 우리 대신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받으셨기에 우리가 죄 사함과 구원의 잔을 마시게 된 것입니다. 주님이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지는 저주의 잔을 받으셨기에 우리가 하나님과 영원히 하나가 되는 복락의 잔을 마시게 된 것입니다. 주님이 하나님의 분노가 가득한 잔을 마셨기에 우리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기쁨으로 가득한 잔을 마시게 된 것입니다.
박영돈 목사님의 페이스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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