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부인들이 남편의 설교에 은혜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간혹 교인들은 설교가 지루해서 주리를 틀고 앉아있는데도 혼자 은혜를 받아 눈물을 펑펑 흘리는 사모들이 있다. 일명 남편도취 형 사모들이다. 지난주에 내가 신학생들에게 웃자고 한 말인데 어제 우리 교회에서 이런 황당한 사태가 벌어졌다.
이번 주일 설교를 준비하면서 나 자신부터 은혜와 감동을 받았고 나름 좋은 내용의 설교를 완성했다고 생각했는데 강단에서는 웬일인지 참으로 맥 빠진 설교를 하고 말았다. 목사가 소위 죽 쓴 설교를 하고 나면 대개 청중의 시큰둥하고 냉랭한 반응을 직감하게 되는데 어제 우리 교회의 분위기도 그랬다. 그런데 유독 한 사람만은 은혜를 받아 눈물을 흘리고 있었는데 그게 바로 내 아내가 아닌가. 내가 신학생들에게 말한 그 우스갯소리가 바로 내 눈앞에서 벌어지는 기막힌 현실이 된 것이다. 아내가 원래 좀 남편도취 형이기는 했지만 나이 들면서 까칠해져 이제는 쉽게 감동받지 않는 타입으로 변했는데, 어제따라 주님께서 설교를 죽 쓰고 의기소침해있을 당신의 가련한 종을 위로하도록 아내에게 특별한 은혜를 주신 것 같다.
아내라도 은혜를 받았으니 다행이지만 설교자 자신은 어느 정도 성령의 은혜와 능력이 자신과 회중에 함께 한 것을 감지한다. 물론 그런 판단과 느낌이 절대적이 아니며 틀리는 경우도 많지만. 설교자가 강단에서 성령의 임재와 자유를 풍성히 누리는 것보다 더 큰 행복과 만족은 없고, 그러지 못하는 것보다 더 곤혹스러운 일은 없다. 로이드 존스나 스펄젼 같은 탁월한 설교자들도 간혹 강단에서 성령이 부재하신 것 같은 당혹스러운 경험을 했다고 고백한다.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그 요인을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유추할 수는 있겠지만,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짚어내기 힘든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사태가 발생하는 것은 설교자가 도무지 컨트롤할 수 없는 설교의 신비한 측면이다. 그래서 로이드 존스는 이것을 하나님과의 로맨스라고 재밌게 표현했다. 또 어떤 신학자는 이런 현상을 ‘은혜를 거둬 가시는 이상한 은혜’ 또는 섭리라고 역설적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설교자가 열심히 기도하고 설교를 준비했음에도 불구하고 강단에서 성령이 함께 하지 않고 혼자 내버려진 것처럼 고군분투할 때가 있다. 그럴 경우 설교자는 영광의 복음을 바로 전하지 못해 괴롭고 교인들에게 풍족한 영적인 양식과 은혜를 공급하지 못해 무척이나 속이 상한다. 그 마음을 그 누가 알랴. 설교자는 죽 쓰는 설교를 하고 나면 정말 죽을 맛이다. 그럴 때 내 아내와 같이 죽 쓰는 설교도 잘 들어주고 은혜까지 받는 교인들은 얼마나 귀한지, 그것이 바로 사랑과 은혜의 기적이리라.
설교자가 간혹 강단에서 겪는 성령이 부재하는 것 같은(실제는 그렇지 않겠지만) 쓰라린 경험은 아마 목사가 평생 짊어지고 가야할 고통스럽고 무거운 짐일 것이다. 그러나 이 짐 때문에 설교자는 점점 낮아지며 자기를 돌아보며 주님의 은혜만을 전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번 주일에 나처럼 맥 빠진 설교를 하신 사역자 분들은 힘내시라. 다음 주에 임할 주님의 은혜가 있지 않은가.
<박영돈 목사님의 페이스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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