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03 11

사람 창조(1) / 정용섭목사

창 1:26-30에는 사람 창조 이야기가 나오오. 다섯째 날까지 우주 만물을 지으시고 마지막 여섯째 날에 사람을 지으셨으면 좋았을 텐데, 그 부분이 우리 입장에서 좀 찜찜하오. 여섯째 날에 사람만이 아니라 땅에 사는 온갖 동물을 지으셨단 말이오. 어떻소? 사람이 특별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좀 나쁘오?      그렇게 생각하지 마시오. 앞선 묵상에서도 짚었지만 사람이라고 해서 땅에서 사는 동물들과 기본적으로는 다를 게 하나도 없소. 이건 생명 현상으로 볼 때 명백한 사실이오. 침팬지와 사람의 유전 인자는 98%가 똑같다고 하오. 사는 방식도 비슷하오. 뭘 먹고 배설하고 성 행위를 하고 자손을 낳고 늙어서 죽소. 가족 관계도 비슷하오. 그들의 사회생활은 내가 잘 모르니 말할 게 없소. 어떤 학..

여섯째 날 / 정용섭목사

창조전승에 따르면 하나님은 6일 동안 세상을 다 창조하셨소. 그 6일을 오늘의 태양력에 따른 6일과 똑같이 생각할 필요는 없소이다.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세상을 모두 창조할 능력이 없다는 뜻은 아니오. 빅뱅에 의해서 무지하게 짧은 시간에 우주가 만들어졌는데, 하나님이 그것보다 더 큰 일도 하실 수 있소.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느냐 아니냐, 하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소이다. 고대인들의 글쓰기 방식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는 뜻이오.      어떤 이들은 창조 마지막 날인 6일 째에 사람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하오. 그게 반은 맞고 반은 틀리오. 6일 째에 하나님은 사람만이 아니라 땅의 온갖 동물들을 만드셨소. 짐승을 만드셨소. 그 표현이 재미있소.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 정용섭목사

어제 묵상의 말미에 거론한 이야기를 다시 이어 가겠소. 그리스도교 신앙은 삼위일체를 근간으로 하오. 예수 그리스도만이 아니라 창조의 하나님과 생명의 성령이라는 관점이 동시에 필요하다는 뜻이오. 이 세 관점이 독립적으로 작용하면서도 서로 소통되어야 하오. 이런 관점을 유지하기가 쉽지는 않소. 그 이유는 어제 말한 대로 한국 개신교 신자들이 지나치게 그리스도 일원론적인 신앙에 기울어 있기 때문이오. 소종파적 기질이 강한 그리스도교 교파일수록 이런 경향이 강하오. 어떤 교파는 사도신경마저 부정하거나 아니면 예배 시간에 함께 암송하지 않소. 이런 신앙적 태도는 엄마 젖만 찾는 유아기로의 퇴행이오.      사도신경의 첫 머리는 하나님에 관한 것이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소. 그게 초기..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다‘(삼상4:11-22) / 리민수목사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다‘(삼상4:11-22)  본문은 하나님의 예언대로 엘리의 집안이 파멸을 당하는 장면이다. 먼저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블레셋과 전투에서 죽게 된다.  이어서 블레셋에 언약궤를 빼앗기고 이스라엘이 큰 패배를 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엘리는 놀라 의자에서 일어나다 넘어져 죽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해산할 때가 가까웠던 비느하스의 아내는 시아버지와 남편의 사망 소문을 듣는 도중 갑작스레 해산하게 되어 비록 아들을 낳았으나 그녀 자신은 급사한다. 하지만 이러한 엘리 집안의 몰락은 단순히 한 집안의 죄에 대한 심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스라엘 전체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이기도했다. 비느하스이 아내는 죽어가면서 고통 중에 낳은 아들의 이름(‘이가봇’-’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한복음1:29) / 이금환목사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한복음1:29) 침례 요한은 예수님이 자신과 비교할 수도 없는 빛의 실체, 생명의 실체라고 하면서 자신은 다만 그 예수님을 나타내고, 그 예수님을 증언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증언했습니다. 예수님에게 침례를 베풀었던 침례 요한이 예수님을 향하여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요단 강에서 침례를 베풀던 요한에게 침례를 받기 위해서 오셨을 때 요한은 "내가 당신에게서 침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마3:14)라며 자신은 예수님에 비하면 예수님의 신발끈을 매주고, 풀어주는 예수님 노예라고 여겨지는 것도 과분하다고 했습니다(요1:27). 그러면서 요한은 예수님을 보고 "보라 ..

심판과 구원 (이사야서 4장) / 김영봉목사

해설:1절은 3장 13절부터 이어지는 심판 예언의 일부다. 전쟁으로 인해 남자들이 희생 당하여 여성들이 배우자를 찾기 어렵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심판의 “그 날”(1절)은 회복의 “그 날”(2절)로 이어진다. 하나님에게 있어서 심판은 마지막이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을 위한 준비다.  2절부터 6절까지는 심판 후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유다에게 행하실 회복에 대한 예언이다. 이 예언이 선포될 때 북왕국 이스라엘은 이미 패망한 상태였다. 이스라엘은 폐허가 되었고, 대다수의 주민들이 사로잡혀 앗시리아 제국의 여러 지역으로 흩뿌림을 당했다. “그 날이 오면”(2절)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결정적인 구원 행동을 시작하실 때를 의미한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살아 남은 사람들”을 통해 그..

역사 앞에 정직하게 마주서야 합니다.(왕하 17:1-23) / 신동식목사

비록 역사가 역사가의 편집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의 역사는 왜곡하는 것이 끔찍한 범죄입니다. 역사는 오늘을 분별하고 내일에 소망을 가지게 하기 때문에 중요합니다.이스라엘의 역사를 기록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나라를 빼앗기고 포로의 생활을 하고 마침내 회복된 나라에서 살때 이렇게 아픈 역사가 어떻게 주어졌는지 돌아보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역사를 바르게 해석하는 일입니다.유다왕 22년에 북 이스라엘에 호세아가 왕이 됩니다. 호세아 역시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지만 그 정도가 약하였습니다.호세아 시대에 앗수르의 왕 살만에셀에게 조공을 드렸습니다. 호세아는 이러한 일을 그만두고 싶은 정치적 목적은 애굽의 왕 소에게 사신을 보내서 앗수르를 견제하려고 합니..

믿음이 연약하다고 느껴질 때 / 봉민근

믿음이 연약하다고 느껴질 때       글쓴이/봉민근신앙은 날마다 자라 가야 한다.현상유지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순간 신앙은 오히려 퇴보하게 된다.과거를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늘 말하지만 현재 믿음이 없으면 나는 믿음이 없는 것이다.과거에 그 뜨거웠던 신앙이 지금 없다면 나의 신앙은 시들어 가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과거의 신앙을 훈장처럼 달고 다니며 옛 추억으로 산다면 슬픈 일이다.솔로몬이 처음 왕이 되었을 때 일천번제를 드리고 하나님의 성전을 지었던 영광도 이방여인들로 인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것을 우리는 교훈 삼아야 한다.한때에는 믿음이 있었지만 데마는 세상을 사랑하여 믿음에서 떠났다.내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열정적으로 다니다가 지금은 세상 속에서 돌아오지 않는 이들을 많이 본다.현재 믿음이..

던바의 법칙

던바의 법칙옥스퍼드대학교 교수인 '로빈 던바'가 제시한'던바의 법칙'에 따르면 한 개인이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는 친구는 약 150명남짓이라고 합니다.친화력이 뛰어난 사람도 인맥이 150명을 넘으면진정으로 친밀한 관계를 맺기는 어렵습니다.이는 SNS 활동으로 인맥이 넓어진요즘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던바는 아프리카 야생 원숭이를 관찰하면서처음으로 이 법칙을 발견했습니다.집단생활을 하는 야생 원숭이는아무리 많은 숫자가 모여 살아도그중에서 친밀한 관계를 맺는 원숭이가150마리를 넘지 않았습니다.인간 사회도 과거 부족이나 씨족 등의생활 공동체에서 구성원 수가 150명 정도일 때,족장이 가장 효율적으로 통솔할 수 있는인원이었다고 합니다.'인생세간(人生世間)'사람과 사람이 살아가는세상사라는 뜻으로,이 단어가..

사마리아는 신앙과 혈통의 순수성을 상실합니다.(왕하 17:24-41)

왕하 17:24-41 묵상입니다. 앗수르의 북이스라엘 식민정책이 실시됩니다.이를 위해 이방 족속들을 사마리아에 이주시킵니다.사마리아는 신앙과 혈통의 순수성을 상실합니다. 앗수르는 제사장을 택하여 여호와 신앙을 가르치니, 이들은 여호와도 섬기고 각 족속의 신도 섬깁니다.각각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합니다. 언약 백성은 오직 하나님만 섬김이 마땅합니다.언약의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기는 것은분명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종교적 열심과 자기 신념을 신앙으로 착각하고하나님을 욕망의 방편으로 여기는 것은 아닌지...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오늘을 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