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리조나 호피 족 보호구역을 위한 선교 활동을 준비하는 자리에서 윤석현 목사님이 호피 족의 역사를 소개하셨습니다. 강의를 시작하면서 윤목사님이 “여러분 중에 혹시 호피가 무슨 의미인지 아시는 분이 계십니까?”라고 질문하셨습니다. 그랬더니 어느 교우께서 “호랑이 가죽이요”라고 답하셔서 모두가 박장대소를 했습니다.
호피라는 말은 “평화로운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호랑이 가죽과는 정반대의 의미입니다. 뉴멕시코 주와 아리조나 주와 텍사스 주에 흩어져 사는 원주민 부족들을 “푸에블로 인디언”이라고 부르는데, 스페인 말로 “부족 공동체를 이루어 사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미국에는 현재 21개의 푸에블로 인디언들이 있는데, 각각 다른 이름으로 불립니다. 아리조나에는 하나의 푸에블로 인디언 부족만이 살고 있는데, 그들의 이름이 호피입니다.
호피 사람들은 1540년에 스페인 탐험가들에게 노출된 이후로 유럽인들에게 지속적으로 수탈과 살육을 당해 왔습니다. 호피 사람들은 침략자들에 대항하여 투쟁해 보았지만 당해낼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그동안 사용해 왔던 모든 무기를 땅에 파묻고 침략자들이 넘보지 않을 광야로 피신해 들어갔습니다. 그들이 피신하여 자리를 잡은 곳은 ‘메사’(messa)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깎아 자른 듯한 절벽 위에 평평한 땅에 주거지를 마련한 것인데, 천연 요새인 셈입니다.
호피 원주민들을 위한 선교 활동은 면면히 이어져 왔습니다. 하지만 초기 개척자들의 협력자였던 선교사들이 그들에게 잊지 못할 사회적 트라우마를 남겨 주었습니다. 그런 집단적 기억으로 인해 호피 사람들은 백인 선교사들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습니다. 호피 땅과 그 부족은 버려진 존재가 되었습니다.
1995년에 장두훈 선교사가 기독교대한감리회의 파송을 받아 호피 마을에 들어가면서 선교의 역사는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그분은 호피 마을과 LA를 오가며 사역을 하다가 순교 하십니다. 그분의 시신은 호피 마을 한 구석에 묻혀 있습니다.
그분 이후로 감리교 선교사들이 선교 역사를 이어 오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임태일 선교사님(현재 서강감리교회 담임)이 계실 때부터 관계를 맺어 오다가 박대준 선교사님이 부임하면서 본격적으로 돕기 시작했습니다.
박대준 선교사님은 웨슬리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할 때 우리 교회의 전신인 센터빌 캠퍼스에서 실습생으로 섬겼습니다.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가셨는데, 수년 후에 일산의 어느 교회의 초청을 받아 설교를 하러 갔는데, 거기서 박대준 목사님을 다시 만났습니다. 얼마 후에 그분이 임태일 목사님 후임으로 호피 마을에 파송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임태일 목사님은 수년 동안 선교의 터전을 든든히 닦으셔서 걱정이 없었는데, 박대준 선교사님이 새로 시작한다는 소식을 들으니 도와야겠다 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우들께서도 좋게 여기셔서 그때부터 함께 사역해 오고 있습니다.
이번 방문이 우리 교회로서는 세번째 방문입니다. 첫번은 팬데믹 전의 일이었는데, 그 때는 선교 현장을 둘러 보는 의미였습니다. 그 다음 해부터 단기 선교를 시작하려 했는데, 팬데믹으로 인해 실행할 수 없었습니다. 그 대신에 선교사님의 음식 사역을 넉넉히 도와 드렸습니다. 지금 돌아보니, 그것이 선교사님의 사역을 준비시키는 기간이었음을 알겠습니다. 선교가 이루어지려면 우선 주민들로부터 신뢰를 얻어야 하는데, 팬데믹 기간 동안 음식 사역을 통해 선교사님은 주민들의 신뢰와 사랑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지난 해 2월, 첫번째 단기 선교를 다녀 왔습니다. 무척 추운 때였는데, 팀원들 모두가 기쁨으로 섬겼고, 큰 은혜를 끼치고 돌아왔습니다. 올해 팀원 중에 절반이 작년에 다녀 오셨던 분들이라는 사실에서 얼마나 감명이 컸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작년과 반대로 매우 더울 때 가게 되었습니다. 여성 교우들께서는 미용 사역으로, 남성 교우들께서는 건축 사역으로, 그리고 특별한 기술이 없는 저와 몇몇 교우들은 심방 사역으로 섬길 것입니다. 한 교우께서는 주방 사역을 섬기시고, 또 한 교우께서는 어린이들을 모아 놓고 태권도를 가르칠 것입니다. 한 주간의 짧은 일정이지만 많은 일을 하고 돌아올 것입니다.
저는 호피 땅을 생각하면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호피 사람들이 겪어 온 아픈 역사 때문이기도 하고, 그 순한 사람들을 그런 곳에 살게 한 백인들의 죄악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 희망 없는 땅에 가서 인생의 전성기를 쏟아 붓고 있는 선교사님들 생각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기회만 되면 그곳에 가고 싶습니다. 끝도 없이 펼쳐진 그 광야에 서는 것이 참 좋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한 없이 작아지기 때문입니다. 그것 만으로도 은혜입니다. 그 마음으로 뜨겁게 섬기고 오겠습니다. 교우들께서는 기도로써 이 선교에 동참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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