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에 못 박고 그 옷을 나눌새 누가 어느 것을 가질까 하여 제비를 뽑더라.'(막15:24)
로마 군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 못 박은 뒤 사형수의 옷을 나눠 갖기 위해 제비뽑기를 했다고 합니다. 이걸 희극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비극이라고 해야 할까요. 십자가 위에서는 한 인간이 죽음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는 바로 그 순간에 그 아래서는 옷에 욕심을 부리고 있다니요.
위 로마 군인들이 어떻게 보이나요? 인격 파탄자처럼 보이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보편 인간입니다. 남의 불행이 나의 행운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생살이에서 매일 배웁니다. 경쟁 중심의 사회에서는 이런 경험이 더 적나라하게 나타납니다. 심지어 교회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납니다. 같은 지역의 한 교회가 분란에 싸이는 경우에 다른 교회는 어부지리를 얻을 수 있겠지요. 이런 걸 노골적으로 원하는 사람이야 많지 않겠지만 무의식적으로 그런 생각에 빠질 때는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인간이 죄인이라는 기독교의 가르침은 옳습니다. 그 죄가 유전된다는 원죄론도 정당합니다. 죄는 교양이나 인격수양으로 해결할 수 없는 존재론적 능력이라는 뜻이니까요. 구약은 그것을 선악과로 설명하고, 신약은 칭의론으로 설명합니다. 선악과 이야기는 너무 명백하니까 접어놓겠습니다. 대신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하는 칭의론을 간단히 설명하겠습니다. 바울에 따르면 사람은 결코 율법으로 의로워질 수 없습니다. 율법은 오히려 인간이 죄에 숙명적으로 묶여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줄 뿐입니다. 의는 인간이 행동으로 성취하는 게 아니라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에 의해 주어집니다. 칼뱅의 용법을 따르면 전가된 의입니다.
십자가 아래서 제비뽑기를 하는 로마 군인들이 우리 자신일지 모릅니다. 참으로 부끄럽고 절망적입니다. 이런 사실을 깊이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긍휼을 바랄 수밖에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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