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겟세마네에서의 공포 (막14:32-42) / 김영봉목사

새벽지기1 2024. 3. 20. 05:57

해설:

예수님은 제자들을 이끌어 올리브 산 계곡에 있는 겟세마네라는 숲에 이릅니다. ‘올리브 기름틀’이라는 의미인데, 그곳에는 올리브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숲 입구에서 제자들에게, 기도하면서 기다리라고 하신 다음 세 제자만 데리고 더 깊은 곳으로 가십니다. 야이로의 딸을 살리실 때(5:40)와 변화산 사건 때(9:2)에도 예수님은 세 제자만 따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모든 진실이 밝혀진 다음에서야 그 사건들의 의미가 드러날 일이기에 그 증인들의 수를 제한하신 것입니다. 

 

얼마쯤 걸어 들어가 다른 제자들과 분리되자, 예수님은 “매우 놀라며 괴로워하기 시작”(33절) 하셨습니다. “놀라며 괴로워하다”라는 표현은 시편의 기도를 생각나게 합니다(시 42:5, 11; 43:5). 환난을 당할 때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정서적 변화입니다. 이 때 예수님은 인성으로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대면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 마음이 근심에 싸여 죽을 지경이다”(34절)라고 고백 하십니다. 제자들은, 의지하고 따르던 스승께서 그렇게 약한 말씀을 하시는 것을 듣고 적잖이 놀랐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 제자를 따로 두고 더 깊이 들어가 홀로 기도하십니다. “아빠”는 예수님이 성부 하나님을 부를 때 사용했던 애칭이었습니다. 그분은 전능하신 분이니 원하기만 하시면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렇게 해 달라고 청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자신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입니다. 아버지의 뜻이 그 잔을 마시는 것이면 그렇게 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니다(35-36절). 마가가 그분의 기도를 한 문장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실은 긴 시간 동안 치열하게 기도 하셨을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하고 제자들이 있는 곳으로 와 보니 모두가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37절). 예수님은 그들을 깨워 일으키시면서 “깨어서 기도하여라”(38절)고 당부하십니다. 예수님은 다시 가서 홀로 기도 하셨고 돌아와 보니 제자들은 또 자고 있었습니다(39-40절). 세 번째도 동일했습니다. 예수님은 “남은 시간을 자고 쉬어라. 그 정도면 넉넉하다”(41절)고 말씀하십니다. 기도를 통해 죽음을 직면할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일어나서 가자. 보아라, 나를 넘겨줄 자가 가까이 왔다”(42절)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후로 예수님은 흔들림 없이 묵묵하게 십자가에 오르십니다. 

 

묵상:

예수님은 죽을 것을 뻔히 알고 예루살렘으로 오셨습니다. 죽음의 위험을 알면서도 피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성경의 예언대로 죽어야 한다는 것도 아셨습니다. 죽은 지 사흘만에 하나님께서 부활시키실 것도 알았습니다. 그런데 겟세마네 동산 깊은 곳에 이르자 갑자기 심한 공포에 짓눌리십니다. 

 

예수님 같은 분도 “죽을 것 같은 공포”에 사로잡힌 적이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위로를 받습니다. 또한 그분이 그 감정을 제자들에게 고백하고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청했다는 사실에서도 큰 위로와 교훈을 얻습니다. 시편의 사람이 그랬던 것처럼, 환난과 시험을 당하여 두려워하고 낙심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반응입니다.

 

그렇기는 한데,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고백한 공포감은 유별난 데가 있습니다. 그분이 인성으로 고난을 직면하셨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분의 이 유별난 공포감은 그가 직면한 죽음이 그분 개인의 죽음이 아니라 모든 인류의 죽음이었다는 사실로만 설명될 수 있습니다. 그분이 마실 잔에는 온 인류의 죄값이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 고통은 그분에게 주어졌던 신성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그분은 한 유대 청년으로서가  아니라 온 인류의 구원자로서 죽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할 수만 있으면 그 잔을 피하게 해 달라고 간구했던 것입니다. 그 잔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 들이고 그 잔을 마실 수 있도록 자신을 준비시키는 데 이토록 치열한 기도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그분은 당신의 몸을 드려 완전하고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희생이 오늘 나의 죄를 속하기에 충분하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